생존기

이혼남인 나는 누구인가?

싱글맨 2022. 8. 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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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남인 나는 누구인가? 이혼을 겪은지는 두어 해 되었다. 6년 내외의 결혼생활은 이혼 조정으로 신속하게 끝났다. 딸과 아들을 두었으며, 이혼 후 양육권자는 아니다. 반드시 아이들과 정해진 시간에 만나고 양육비를 빠짐없이 지급해왔으며,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 주말은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갑자기 나를 정리하는 글을 적는 이유는 이제 본격적으로 생존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은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이혼남의 일과 살림살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의 일터

이혼남인 나는 아직 직장인이다. 복잡한 출퇴근길을 헤매며 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 많은 얼굴들과 발자국들을 본다. '이혼남, 돈이 전부다.'라는 글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나는 돈을 위해 일을 해야한다. 그래도 큰 회사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곳에 다니지만, 삶은 팍팍하다. 가끔 아닌 척 여유를 부리기도 하지만, 조금 여유를 부리면 며칠만 지나도 무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난 학교를 꽤 오래다녔다. 그리고 학교를 다닌 기간 정도의 회사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학을 하고 취업을 할 때, 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잃지 않는 길이었달까. 그걸로 이혼 이후의 삶을 여유있게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결혼과 이혼도 문제였지만, 그것보다 '합리적인 선택' 자체가 문제였다. 시간이 내 편이 아닌 나이가 되면, 잃지 않는 선택은 반드시 이기지 못하는 선택이 된다. 물론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결혼했을 무렵 사실 결혼생활의 경제학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했다.

결혼을 해서 한 번 정해진 가정의 생활 수준은 이혼을 해도 유지되려고 한다. 결혼을 한 두 사람이 속한 사회 계층에 따라서 아이들의 생활 수준이 결정되고, 부모의 경제생활의 크기에 따라 양육비도 책정이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벌이에 크게 문제가 없다면 결혼 이후 한 때 부부였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생활수준에서 아이들이 자라게 된다. 자녀없이 이혼한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녀가 없기 때문에 이혼한 이후, 이전 본인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것 역시 이혼한 두 사람의 벌이에 따라 결정된다. 양육비가 들어가지 않는 대신 본인의 개인 소비량이 결혼 이전으로 돌아가면서 씀씀이는 커진다. 특히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찾으려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생활비를 쓰고 여유분의 소비가 끝나고 나면 얼마나 남는지는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혼 이후 삶의 중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걸 한 번 더 결혼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뭔가 새로운 미션을 본인에게 부여하거나 이혼당사자의 벌이는 항상 모든 걸 제한하는 조건이 된다. 생활 수준이 부유할수록 결혼에서 선택지가 많은 것은 이혼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유할수록 이혼도 선택의 문제가 된다. 재산분할의 크기가 이혼을 가로막을 수는 있어도 돈이 없어서 이혼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즉 돈이 있다면 결혼이든 이혼이든 옵션이 된다.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조금만 시선을 멀리두면 경제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눈 앞의 목표는 직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회사가 대기업이라는 사실은 오늘의 위안은 되지만, 내일을 위한 대비책이 되지는 못한다. 어떤 식의 이혼을 했는지와 관계 없이 나이를 먹으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고, 내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노동소득으로 버는 돈 이외의 다른 수입이 있어야 한다. 사업소득과 투자소득이 필요하다. 나도 지난 몇 년 간 다른 일을 해보고, 자산시장에서 돈을 벌고 세금도 냈다. 당연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건 그냥 시험해 본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는게 맞는지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있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고 싶진 않다. 흔한 플롯이지만,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고 자랑하면서 쉽게 회사를 떠나는 일은 이혼남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 3년간 자영업 시장과 자산 시장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몇 푼 벌었다고 마흔을 목전에 둔 이혼남에게 쉽게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창업 시장에서 도전했다가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몇 명의 지인들, 어렵게 해외로 이직을 했지만 바뀐 생활 수준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자산시장에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 몇 명을 주변에서 알고 있다. 그들이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했다고 해서 완벽하고 영구적인 성공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어렵다고 계속 우울한 얘기만 하고 있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나는 누굴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앞가림을 하기 위해 하루씩 살아갈 뿐이다. 하나 분명한게 있다면, 지금 이혼한 40대 남성 직장인은 뭐라도 도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점이다.

양육권이 없는 나같은 경우에, 어쩌면 이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무조건 도전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내가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어찌어찌 가늘고 길게 회사를 다니다가 양육비를 주고 나서 노후 준비없이 나이가 들고 죽겠지. 심할 경우 아이들은 나를 잊을 것이고, 전처를 나를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들은 이미 내가 안고 있는 것들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회사에서 늙어도 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2020년대 회사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회사밖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과 같아졌다. 회사 안이 전쟁터고 회사 밖이 지옥이라는 말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나는 당장 회사밖으로 나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의 업무는 변경되었다. 회사에서 내가 새로 하는 업무는 그 성과가 나의 것은 아니지만, 과정이 나의 창업 과정과 매우 유사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세팅을 해왔으니까. 그렇다고 회사 일을 잘한다고 내가 회사밖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쓸만한 연습을 해보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은 된다.

나는 이미 반쯤은 회사밖으로 나가 있다. 회사밖의 일이 시작된 것은 이미 2년 전의 일이다. 아주 작은 성과들은 만들어 왔고, 어떤 틀로 돌아가는지 연습은 되어 있는 상태다. 이제 곧 이 블로그에도 사업자 정보가 추가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회사 밖의 일이 '회사' 안의 일로 변하는 세상이 되도록 일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의 전후 성장기에 자식들을 서울에서 교육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이제 내가 아버지로서 해야할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나의 아이들이 이 기록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적어 나간다. 언젠가 나의 '회사'일이 성장해서 나의 딸과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결정권과 소유권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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