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의 자기 리셋은 필수다. 그걸 위해 이혼을 하지 않았는가.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픽처'는 그런 면에서 소설 이상의 작품이다. 특히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경험한 이에게는 일종의 교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왜 이혼이 필요한지, 무엇이 이혼을 결행하게 만드는지, 이혼 이후에 나를 어떻게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혼 후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후 내용 소설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 주의!)
사진작가를 꿈꿨던 주인공이 안정적인 삶과 결혼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어지간한 사진작가보다 더 좋은 현상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진에 진심이지만, 제대로 작품을 가지고 사진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적은 없다. 자신의 안정과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로펌에서 파트너 자리를 눈 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중상류층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배우자인 베스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소설가 지망인 베스는 본인의 실패와 권태를 반쯤은 남편 탓, 나머지 반 쯤은 부부 사이의 두 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된다. (흔한 얘기다.)
이혼을 해 본 입장에서 주인공의 경로를 복기해보면, 이미 여기서 이혼을 했어야 했다. 자신이 직업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아이때문에, 배우자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여생을 같이할 수는 없다. 이혼을 감행해야 하는 시점은 항상 당사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이른 시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혼이라는 민감한, 리스크가 많은 결정을 미루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아귀가 안 맞고 말이 안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 때 이혼을 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다.
소설 속에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베스는 이웃에 사는 게리 서머스라는 사진작가와 불륜의 관계에 빠진다. 처음엔 느낌이었지만, 나중에 극이 전개되면서 주인공은 게리와 게리의 집에서 독대하여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끼리 서로 현상실과 작품을 구경하게 해준다는 빌미로 만났지만, 베스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게리의 마지막 말은 이거였다. '당신은 그냥 회삿물 먹는 양복짜리에 불과해, 지 마누라 하나도 침대에서 만족 못 시키는....' 이 게리의 마지막 말이 주인공이 게리를 죽이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저 문장을 끝내는 순간까지 참지 못하고 게리를 죽여버렸다.
이혼이 이래서 필요하다. 이혼은 불필요한 살인을 막는다. 장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다면 어느 사회나 수많은 강력사건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혼이란 더 이상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도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법적 조치만 하고 서로 물러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해당한다. 이혼 제도가 있음에도 아내를 죽인 남편, 남편을 살해한 아내,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 때문에 벌어지는 치정 살인이나 폭행 같은 사건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다면 이런 사건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저 얘기를 게리로부터 들었을 때, 필요하다면 녹음을 해서라도, 저 말을 빌미로 이혼을 했어야 한다. 물론 들어면 화가 나는 말이지만 살인이 아니라 이혼을 결행하는 시점이었다면 어땠을까. 소설로서는 그렇게 하면 엄청 재미가 덜 해지겠지만, 만약 이제 내 인생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필요한 증거만 확보하고, 여기서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최대한 합법적인 증거를 가지고 법정으로 가서 이혼을 진행해야 한다. 인생은 현실이고, 분노와 혐오 같은 감정은 필패의 근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댓가를 치러야 했다. 주인공은 게리의 사체를 유기하고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시도를 한다. 이혼이 아닌 살인을 택한 댓가다.
게리의 주변을 정리하고 마치 사진 작업 때문에 떠나는 것처럼 꾸미는 작업을 하면서 주인공은 게리의 편지를 살펴본다. 베스와 게리의 통신내역만 본 것이 아니라, 사진 작업 때문에 잡지사와 연락하거나, 은행 같은 금융기관과 연락하는 것도 빠짐없이 모니터하고 뒷처리를 한다. 주인공이 이렇게 세심한 처리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게리 서머스의 이름으로 앞으로 여생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디가 되었든지 게리가 누구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혼을 막 한 사람이라면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이혼을 하면 나라는 자아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이혼 후에 행복해요' 라는 감정적인 Egoboost를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월급부터 가스비 정산까지 온전한 내 비용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기회다. 이걸 하지 못하면 양육비를 지급하면서 내 생활이 가능한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주인공은 게리의 카드비까지 챙겨 알뜰하게 게리 본인의 계좌에서 처리하면서 빚을 갚아 청산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베스에게도 연락해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물론 메세지로) 빚이 없는 이상, 금융기관에서 게리에게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그렇게 자기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이혼을 한 나도 그렇게 해야했다. 양육비와 생활비를 제외한 돈으로 내가 생활할 수 있는지 측정해보고, 내 비용 구조를 다시 짜는 작업을 했다.
특히 처음해야 할 일 중 필수적인 부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 아니라, 이혼 전의 자기 자신을 철저히 지우는 일이다. 스스로의 기억을 잊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빅픽처의 주인공이 한 초기 작업중 하나가 바로 시스템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게리를 구분하는 일이다. 써드파티가 제공하는 우편 포워딩 시스템을 도입한 것, 고속도로에서 절대로 제한 속도를 어기지 않는 것, 철저하게 큰 휴게소만을 이용하고 모든 비용은 현금으로 지불한 것, 이런 것들 말이다. 이혼 직전과 직후에도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 만약 소설 속의 주인공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인물이었다면, 망할 구글 타임라인과 위치서비스부터 꺼버리고 모든 기록을 지울 것이다. 휴대전화 기록과 소셜미디어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대상이다. 제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혼 이후의 원하는 모습에 부합하는 온라인 자아를 만들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원이면 회사원, 자영업자면 자영업자다운 새롭고 건강한 모습의 구조물이 있어야 이혼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보트사고를 앞두고 자기 아들과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이혼남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서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부분이 여기 이 부분의 몇 페이지다. 나는 아이들과 면접을 빼놓지 않고 하지만, 아이들을 제 엄마집에 다시 데려다 주거나, 영상통화를 하다가 뭔가 심통이 나서 아이들이 끊어버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면접을 하는 나와는 다르다. 그의 원래 인생은 끝났고,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빠 사이에 뭔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고 제3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 때문에 생기는 아쉬움과 어색함은 어쩔 수 없이 매우 비슷한 비감이 든다.
마지막 인사와 모든 뒷처리가 끝나고 보트 사고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나서,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말하는 (생각하는) 장면이 강하게 남는다.
"My name is Gary Summers. I am a photographer."
주인공이 게리가 되어 나는 사진작가라는 생각을 하는 장면은 두어 해 전 동행변호사와 가정법원을 나서던 어느 가을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 날은 새로운 지표가 되는 날이었고,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중요한 날이었으며, 깊은 반성과 함께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이혼을 결행한 나는 이제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했다. 살인이라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훨씬 덜 극단적이지만, 이혼이라는 사건이 사람에게 남기는 영향은 반영구적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미국의 고속도로 시스템을 떠돌다가 자신의 부고를 접하고 몬타나의 깡촌으로 들어가 거기서 실제로 사진작가로서 살게 된다.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나서야, 평생 깊은 취미로만 머물렀던 사진이 업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진작가로서 갑자기 성공하게 된 것이다. 몬타나를 주제로 한 인물 사진과, 화제 사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본인의 정체성이 알려지지 않아야 할 사람이 본인이 알려져야만 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 문제였고 (그것이 설령 자신이 오랫동안 꿈으로 간직했던 것이라도), 몬타나에서 정착하면서 새로운 여자가 생긴 것도 문제였다. 갑자기 유명해지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자기주도권을 잃는 계기가 된다.
이혼 이후에 자기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 권리를 챙기는 것도 근육의 발달처럼 충분히 숙달될 때까지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 물론 짧으면 짧을수록 좋지만,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었다면 애초에 성급하게 결혼을 하지도 이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소설 속의 살인을 이혼에 빗대어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이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은 주인공 부부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장면들과 당신의 생활이 비슷하다면 심각하게 뭔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자기 생활 수준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가,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줄어들고 재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가, 아이를 가지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거나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직업적 성공이나 실패를 부부 관계에 투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반면교사가 되는 작품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자신이 파트너 변호사 승진을 앞둘 정도 성공한 것도, 자기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아내를 외조하기 위해, 본인이 희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심지어 성공도 희생이 될 수 있고, 희생을 치른 만큼 인간을 남탓을 하기 마련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뭔가 가지고 있는 불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남탓을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의 사인이다. 빨리 문제를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만약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면, 이미 늦었다. 이혼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인을 하는 파국은 막아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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