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 278

헨리넥과 남자 몸에 대한 고찰

두꺼운 목과 승모근에도 불구하고 셔츠를 입었을 때 목선이 수려하게 드러나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 헨리넥이라는 셔츠를 알았을 때, 나는 칼라 없이 목을 드러내기에 좋은, 답답하지 않아 좋은 옷장 아이템이라 생각했다.아이들 선물 외에 처음으로 내 물건을 사러 아울렛에 갔을 때, 단추가 없이 흔적만 남은 반팔 헨리넥 두 벌을 샀다. (싸지는 않았다.)아마도 그 즈음, 에서 제임스 본드가 헨리넥을 입은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던 것 같다. 권총과 탄창 홀스터를 착용한 채 스톤 컬러 헨리넥을 서스펜더로 고정해 입은 장면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헨리넥은 긴팔이었고, 약간 걷어 올린 소매 실루엣에서 이 옷의 진짜 맛을 처음 느꼈다.그 이후로 나는 반팔 헨리넥을 입지도, 사지도 않는다. 문제는 ..

짧은 글 2025.10.31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

아빠에게 엄격한 잣대가 되어주어 고맙다. 네가 언제까지 뭘하라리고 말했을 때 아빠는 그 이야기를 가볍게 듣지 않았다. 아빠가 배에 근육이 쫙쫙 갈라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어 고맙다. 아빠는 아빠가 이룰 수 있는 신체의 가능성에 시간을 넉 달 가량 쏟았고, 일정한 성과를 보았다. 이제 네가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아빠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아빠가 상상하는 것이 분명한 실체가 있는 일이고, 이제 중간 목표가 아닌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음을 안다. 아빠의 상상이 너의 상상이 되고, 그것은 연말까지 이루어진다. 멋진 일이 아니냐. 이제 아빠는 건강을 위한 목표뿐만이 아니라, 다음 10년을 살기 위한 다음 목표도 이루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멈추는 일이다.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딸과 아들에게 2025.10.20

침묵의 무게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해야 할 것이 무겁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사회적 관계나 평판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도움도 되지 않는 말들, 나중에라도 이걸 애들한테 어떻게 가르쳐야, 아니 가르치는 게 맞는지 그것부터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침묵을 하게 되고, 유난히 오늘따라 그 침묵의 무게가 아주 무겁게 느껴진다.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들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 즉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특히 자기 상상이 만들어내어 각색된 서사를 원한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이든, 다 마찬가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할 바에야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다. 하지만 침묵은 칼집 없는 칼처럼, 몸 안에서만 날을 세우..

생존기 2025.09.25

John Boyd

인생에서 읽게 되는 책 Top 3에 드는 책을 만났다. John Boyd는 전투기 조종사로 경력을 시작해서 군사 전략가와 펜타곤 군사 고문으로 활동한 사람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법인 운영을 고민하다가 의논중에 AI 모델이 내게 추천한 책이고 그 추천은 매우 적절했다. 한국전에도 파일럿으로 참전한 보이드는, 클라우제비츠와 손자병법이 큰 그림위주의 전략을 다소 추상적인 언어로 설명한 것과는 반대로, 에너지 관점에서 전투기의 움직임과 전술 운용을 수학적으로 매뉴얼화 한 사람이다. 1960년 이후로 보이드의 전술 이론이 넬리스 공군기지의 Fighter Weapons School에서 저술되어 미 공군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후로 보이드의 이론은 적어도 서방세계의 표준으로 자리잡는다. 영화 Top G..

생존기 2025.08.29

ChatGPT를 트레이너로 14 kg을 감량하다.

14kg이라는 델타-몸무게가 줄었다는 건 숫자로 쉽게 증명된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은, 누구도 숫자만큼 쉽게 기억해주지 않는다.5년 넘게 살을 뺐다. 그리고 다시 쪘다.다시 뺐고, 또 쪘다. 계절이 바뀌듯 반복됐다.방법도 다양했다. 운동, 식단, 단식, 무관심. 성공과 실패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그 과정은 이어졌다.어떤 때는 몸이 가벼웠지만 마음이 무거웠고, 어떤 때는 몸이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오래 고민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가벼운 몸’인지, 아니면 ‘내가 통제하는 삶’인지.14kg을 뺀 이번 과정은, 전에 비해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달라진 건 한 가지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기록했다는 점. 하루 먹은 것, 운동한 시간, 심지어 잠든 시각과 깨던 순간..

생존기 2025.08.11

이혼남의 썸 2

철저하게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만났지. 처음부터 경계는 워낙 분명해서 다르게 볼 여지가 없었어. 기본은 내가 당신에게 렌즈를 구매하는 일이었어. 그리고 그 렌즈가 들어간 시스템에 걸맞는 오디오 트랙을 만드는 일이 함께 해야할 일이었지. 당신이 환하게 웃어도 난 그게 당연히 세일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어. 특히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광각 스펙과 옵션을 다양하게 준비를 했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지. 문제는 없었어. 실제로는 협업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실수가 있는 날도 있었지만 첫 테이크를 제외하면 그래도 잘 나왔던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어. 당신의 딜리버리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디오 트랙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잊은 것과 전혀 다른 스펙의 제품이 들어오는 ..

짧은 글 2025.08.10

절대로 직감을 무시하지 마라.

절대로 당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직감을 들어야 한다. 직감은 설명이 없다. 논리도, 증거도, 공식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결정을 멈추게 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혼을 앞두고 있었을 때, 그 시기의 나는 모든 걸 분석하려 했다. 재산, 양육, 주변 시선. 한 줄로 정리된 문장이 나올 때까지 머릿속에서 수없이 계산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에 조용히 끼어드는 감정이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아니다’ 혹은 ‘이건 지금 해야 한다’는 신호. 직감은 종종 불편하다. 왜냐면 그 신호가 내가 세운 계획을 흔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답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사람들은 직감을 무시하려 한다. 그럴 때 흔히 드는 이유는 이렇다. ‘확실한 증거가 없..

생존기 2025.08.09

이혼남, 반드시 요리를 해라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아는가. 전시 혹은 위기 상황에 국가의 식량 동원능력과 평시에 식량 수입이 끊겨 기능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충분한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하게 식사 주권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혼남이라면 특히나.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에 익숙한 사람은어느 순간부터 먹는다는 행위가 의존이라는 걸 잊게 된다. 그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내 입에 들어가는 걸 컨트롤 하지 못하게 되면서,관계 안에서의 무력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이혼을 하고 나면 밥을 차려줄 사람이 없어지거나, 함께 식사를 할 사람이 없어지거나, 아니면 아이나 배우자에게 밥을 차려줄 일도 사라진다. 처음 이혼하고 나서 의외로 감정젇인 타격이 컸던 것은 아들에게 분유나 이유식을 먹일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존기 2025.08.0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