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썸 2

철저하게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만났지. 처음부터 경계는 워낙 분명해서 다르게 볼 여지가 없었어. 기본은 내가 당신에게 렌즈를 구매하는 일이었어. 그리고 그 렌즈가 들어간 시스템에 걸맞는 오디오 트랙을 만드는 일이 함께 해야할 일이었지.

당신이 환하게 웃어도 난 그게 당연히 세일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어. 특히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광각 스펙과 옵션을 다양하게 준비를 했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지. 문제는 없었어. 실제로는 협업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실수가 있는 날도 있었지만 첫 테이크를 제외하면 그래도 잘 나왔던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어. 당신의 딜리버리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디오 트랙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잊은 것과 전혀 다른 스펙의 제품이 들어오는 것, 미팅을 연기하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당신은 이걸 개인적인 문제로 설명하려 했지만, 그 말은 쉽게믿기지 읺았다.

어느 날 네 번째 오디오 트랙 검수와 컬러 보정이 끝나고 당신은 나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을 했다. ‘나와 함께 검수만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프로답지 않은 말이야. 덕분에 나도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버렸어. 일인지 데이트인지 모르겠는 방문과, 데이트인지 영업인지 모르겠는 사적인 외부 만남도 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 고장으로 다른 폰을 쓰고 있다면서 당신 조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견적서에 제시된 가격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아무리 대기업에서 더 비싸게 뜯어내는 곳이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이아고 해도
Lead time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견적가가 타업체 연구원 대비 세 배가 차이가 나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compliance team을 통해 당신 소속 회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벤더 지위를 박탈할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지. 물론 조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강한 심증과 정황증거이고. 심지어 일부러 수입 제품 납기를 지연시켜 환차익을 노렸다는 주장도 해볼 수 있을 정도로.

나이 사십이 넘어서 내게 순수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아. 이걸 내 결정으로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내게도 혐의가 돌아오는 일이라 할 수 없어. 내가 가진 팩트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상태야.

아마도 당신도 눈치를 챘기 때문에 지금 발을 빼려 하는 것일테지. 내 짐작은 좀 과하긴 해도 칠할 이상 정확한 경우가 많아. 주행 시스템 재생에 필요한 오디오 트랙은 이미 영상과 합쳐져서 사용하고 있지만, 당신이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묻힐 거야. 나를 통해 회사는 이미 정당한 댓가를 지불했으니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점은 법무팀 검토를 마쳤다. 난 내 커리어를 걸고 당신과 썸을 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참고로 이 건이 타겟은 아니지만, 지금 감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적지 않았군.

마지막 데모를 마치고 나에게만 인사를 하고 당신이 돌아선 것, 다른 직원들에게 인사하지 않고 임원진에게 이메일이나 명함을 돌리는 일도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안쓰러울 뿐이야.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게 하청업체의 고민 따위 따분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