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1인 1주택이 기본이다

싱글맨 2022. 4. 28. 22:33
반응형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데리고 올 때, 딸 아이가 간판을 읽었다. 지금은 말이 청산유수고 한글을 곧잘 쓰기도 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아직 한참 한글 읽는 법을 배우고 있는터라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읽을 때였다. 

"부.동.산. 아빠 부동산이 뭐야?"

좋은 질문이다. 부동산이란 무엇인가. 한자를 풀이하면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라는 뜻이다. 


"으응, 저긴 집사러 가는데야....나중에 우리 딸은 저기 자주 들어가봐야 한다?"

이 설명이 과연 충분한 설명이겠는가. 어지간해서 아이들에게 뭘 하라고 말하지 않는데, 이 날은 처음 그 비슷한 얘기를 해본 것 같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무슨 긴 설명을 하겠는가. 하지만, 딸에게 한 말은 빈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날 딸에게 이 말을 한 것은 투자 자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투자 자산을 가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얘기를 딸과 나눌 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1가구 1주택이니, 1가구 2주택이니 하던 부모님 세대의 용어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용어가 살짝 변경되어 1세대 1주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리고, 1세대 2주택이라는 말보다는 일시적 2주택이라는 말이 더 유행하는 것이 2022년 현재의 생황이다. 이런 용어의 사용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지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는 아니다.

이혼을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겪은 것은 나만 들어갈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공간 자체는 빌려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 공간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이 피난처와 비상금의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이걸 알게 된 이후에 나는 내 주변의 남은 가족들에게 무조건 1주택을 권한다. 딸아게 굳이 부동산이 뭐하는 곳인지를 알려준 이유는 나의 딸과 아들에게도 각각 1주택을 권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참 지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결혼을 한 부부는 사실 아주 예외적인 형태의 가족 구성이다. 부부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부부의 숫자가 적지는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시간 순서에 따라 놓고 보았을 때 '부부'를 경험하는 시간의 비중은 아주 짧다. 20대 후반부터 40세 전후까지의 10년이 안 되는 기간이 실질적으로 결혼한 상태로 부부인 시간이다. 결혼 이전에는 독립을 지향하는 싱글로, 결혼이 끝난 이후에는 남은 인생을 혼자 살아 나가야 하는 싱글로 산다.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싱글로 사는 기간은 적어도 부부로 남아 있는 기간만큼이거나,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부부로서 결혼 생활을 액티브하게 하는 시간이 아주 짧은 토막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잘 새겨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혼만이 결혼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사실상 몇년만에 끝난다. 이혼이라는 절차를 겪지 않아도 헤어져 결혼을 유지하고 있거나 '졸혼'을 했거나, 배우자 이외의 연인이 있거나, 부부 둘 중 한 사람이 죽었거나. 생각보다 싱글의 삶은 길다. 이런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의 부모님 세대까지 '부부로 일생을 함께하는 삶'이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사회적인 잣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결혼한 부부의 삶'은 더 이상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아직 사람들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결혼은 분명이 특이한 것이다. '비정상'인 것이라기 보다는 '특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그만큼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것은 확률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기엔 개인의 힘이 너무 강해졌다. 

1인 1주택은 필수다. '1세대 1주택'이 아니라, '1인 1주택'이다. 이혼 이후에 집이 남아 있다면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휴식처가 된다. 아직 결혼적령기에 이르지 못한 자식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집이 필요하다. 특히 아들이라면 집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적인 통념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혼하기 몇 년 이전에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그 집을 이혼이이라라는  불상사가  생겼을  때  재산분할 대상에서 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차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회복과 재기의 발판이 된다. 가족끼리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받더라도 서로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각자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래서 이건 투기 같은게 아니다. 그냥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도 인플레이션 정도는 따라가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저조한 현실에서 '1인 가구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 곧 1인 1주택이 완성된다. 이제 '우리 집'은 없다. '아빠 집', '할머니집', '삼촌집'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우리집'을 빨리 '엄마집'으로 인식하길 바란다. 그 자각이 빠를수록 좋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