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결혼은 기한이 없는 부채다.

싱글맨 2022. 4. 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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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기한이 없는 부채다. 정확히 얘기하면 결혼이라는 채무는 부부 둘 중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 (백년해로한다면) '결혼이 부채'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있다. 실제로 어떤 커뮤니티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가 퐁퐁남 소리를 들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최대한 건조하게 결혼의 경제적인 의미에 대해서 경제학적 개념과 민법의 용어를 활용하여 기술해보겠다.

이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운가? 결혼은 준비 과정부터 청산까지 끝끝내 돈이 나가는 과정이다.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흔한 착각은 맞벌이 부부에 대한 경우에 많이 발생하는데, 버는 사람은 둘이 되었고, 결혼을 통한 합가를 통해 나가는 비용은 절감되었으니 돈이 벌린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흔히 결혼을 옹호하는 논리로 많이 사용되고, 빨리 결혼해야 돈이 모인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한 번은 거쳐가는 주장이다. 이것은 특정한 조건들이 만족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건,

1. 결혼에 임하는 두 사람 모두 소득이 있으며, 본인의 재무 상태를 숙지하고 있다.
2. 부부간에 완벽한 경제적 투명성이 보장된다.
3. 부부 두 사람의 재무적 결정이나 투자 성향이 비슷하거나 거의 같다.

이 세 조건이 모두 만족되었을 때 결혼으로 탄생한 가족은 경제적 단위인 '가계'로서 소득을 늘려 축적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자산증식을 해나갈 수 있다.

'결혼이 부채'라는 말은 단순한 명제일 뿐이다. 지극히 중립적인 말이다. 그건 그냥 '결혼은 돈이 나가는 행위'라는 뜻이다. 결혼이 부채라는 것은 결혼을 옹호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명제가 아니다. 그 명제 자체가 부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부채'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어느 부부나 소비를 하고, 노년에 배우자가 아프다. 병원비가 들어간다. 자녀에게는 양육비가 필요하다. 부부의 최종소비는 상속과 증여에 대한 세금이다. 즉, 배우자와 자녀 결혼의 결과는 모두 죽을 때까지 돈을 쓰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래서 결혼이 무가치 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어도 돈은 쓰게 되어 있으므로 사전적 정의에 따라 부채라는 뜻이다. 그리고 가족이 소중한 만큼, 무기한이다.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 그들을 위해 소비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무기한의 부채, 일종의 영구채권이다. 혼인증명서는 부부가 영구채권을 발행한 채무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채무자에게는 원리금 상환의 의무가 있다. 가족이 발생시키는 모든 지출과 그 이자에 대해 부부는 공동의 지불 상환 의무를 진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혹은 '엄마는 강하다' 라는 말은 저 지불 상환 의무에 대한 일종의 '성스러움'을 대변하는 말이다. (빚이 있으니 힘내라.....)

결혼의 핵심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결혼을 통해 비용이 증가한다. 흔히 결혼해서 돈 모은다는 얘기는, 매출이 두 배가 되면 수익도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초보창업자의 믿음과 비슷한 데가 있다. 매출이 두 배가 되어 수익도 두 배가 되려면 비용을 적어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부부가 나이가 들수록, 자녀가 클수록 비용이 증가한다.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는 것이 핵심인 이유는 채권의 만기가 '죽을 때까지' 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영원한 비용을 커버할 수는 없다. 자산이 적고,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할 때는 저 세 가지 조건을 잘 만족시킬 수 있는 부부간의 협의와 지혜가 필요하다. 노동 소득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버는 사람이나 원래 자산이 많은 사람은 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따진다. 특히 3번 조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배경과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이혼 블로그에서 이 정도까지 글을 전개했는데도 이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혼과 돈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이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유가 성격 차이가 되었건, 외도가 되었건, 사돈간의 불화가 되었건, 가정폭력이 되었건, 이혼은 배우자가 발생시키는 비용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것이다: '너한테는 더 이상 돈(시간) 못 쓰겠다.' 채무불이행의 결과는 가계 자산에 대한 재산분할이다. 위자료가 발생하는 만큼 가계 자산에서 헤어컷, 할인이 들어간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사항은 자녀의 양육비는 말소되지 않고 법이 정한 금액을 인수하게 되어 있다. 기간은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대략 18년. 슬프지만, 오히려 이혼을 하면 채무에는 만기가 생긴다. 배우자에 대한 채무는 위자료 지급과 재산분할이 종료되는 즉시 사라진다. 법률적인 완결성을 기하기 위하여, 연금수령액에 대한 재산분할을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이 보통 조정문서나 이혼소송 판결문에 들어가게 된다.

아 한 가지 더, 결혼하면서 발행하는 영구채권의 금리는 한국은행이나 연준의 금리 혹은 COFIX 금리나 개인신용에 따른 금리 따위가 아니다. 현 시점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발생하는 실질 인플레이션이 실질 상환 금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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