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은 직장인으로 남을 수 없다. 직장인으로 남아 있으면 노후란 없다. 이혼남에게 이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혼한 남자는 직장에서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와 반드시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모두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계속 돈을 벌어야하므로 호기로운 퇴사란 있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 직장에 남아 있으면 끝이 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사원증은 노예의 표식이다.
이미 '이혼남, 돈이 전부다' 를 위시한 이 블로그의 일련의 글들이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생존기 카테고리에서 이 글들을 찾을 수 있다.) 블로그의 타이틀이 이혼남 생존일기니까, 좀 디테일한 얘기를 해보자. 한 달 현금흐름이 얼마인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양육비와 생활비가 가장 큰 비용의 두 축이다. 현금흐름이 플러스라면, 그 돈을 투자해서 자산을 늘려가면 된다. 고소득이고, 이혼 후에 자녀가 없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현실이 그렇지가 못하다. 양육비와 생활비는 거의 정해진 금액이 들어가지만, 여기에서 다른 비용 항목이 발생한다. 주택담보대출이 있거나, 각종 신용대출이 있거나, 집안에 빚이 있거나, 여러가지 다른 비용을 치르려면 생각보다 플러스로 만드는 작업이 타이트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재정 상황은 다르지만, 직장인에게 돈은 항상 모자란다.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투자는 필수이고 사업은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다. 문제는 직장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직업이 공무원이고 대기업 직장인이라고 하더라도, 심지어 정년까지 버티면서 나이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혼남인 당신이 정년을 맞았을 때를 상상해보자. 투자와 사업 소득이 없는 상태로 운이 아주 좋다면, 양육비를 자녀 성년 시점까지 다 내주고 상환액이 2억 내외로 남은 집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집은 팔아서 차익을 남기고 남은 돈으로 더 작은 집으로 옮기거나 집을 임차해서 들어가고, 나머지 금액으로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이것도 당신이 잘 준비해서 운이 상당히 좋았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당신이 최소한 내집마련을 하고, 항상 플러스로 저축액을 유지했다는 가정을 했을 때 이야기니까.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삶인가? 세부적인 것들을 상상해보면, 저런 상황에서 살고 있을 때, 아이들의 대학등록금을 부담한다거나, 은퇴 이후 여행도 다니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연금이 있다면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연금으로 충족할 정도이려면, 지금 현재 이미 상당히 고소득이어야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직장이 더 이상 당신을 원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서 이혼남은 직장인으로 남을 수 없다. 자의든 타의든, 이혼남은 반드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언제 떠나느냐이지, 떠나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아니다. 심지어 당신이 임원을 달아도 마찬가지다. 오너가 아닌 임원은 직장인이다. 이 글을 읽는 상무급 이상 임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고소득 알바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남을 챙길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사람이 돈돈돈 할 수록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인정했다. 나는 지금 분명히 가난한 사람이다. 지금 돈돈돈 하지 않으면 언제할 것인가. 돈에서 초연한 척, 나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을 둔 아빠로서 직무유기다.
나는 투자와 사업소득을 지향한다.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그래서 나는 모든 자산 클래스에 손을 댔다. 남은 가족들의 1인 1주택을 지향하고, 코인 트레블룰을 공부하면서 ISA 계좌를 운용해야 한다. 돈돈돈 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없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법인 사업자를 내고,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법인 결산을 3월말까지 마쳤다. 자가격리 되어 있는 와중에도 원격으로 대리입찰을 진행하고, 쇼핑몰에 올려볼 소량의 샘플을 주문하면서 4월 부가세 신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곧 5월 해외주식 양도세를 챙겨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른 기름값에 유류비를 줄일 생각을 하고 있다.
아빠로서 생존하는 것은 즐거움과 자책감의 연속이다. 왜 좀 더 사업과 투자에 적극적이지 못했는지 반성하면서도, 수익을 내고 돈을 운용하면서 희열을 느끼다가,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지난 번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더 많이 놀았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직장에서 밥값을 하기 위해 회사 사무실에서 스프린트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아빠로서의 일상이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할 일을 다 못하고 게으름을 부리게 될 때 힘들다. 그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애써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뿐.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돈 이야기도 더 자주 풀어갈 예정이다. 결혼한 남자라면,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돈의 액수를 반으로 나누면 된다. 그게 최종적으로 당신에게 실제로 남는 돈의 크기이다. 그 액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이가 들수록 부부의 결혼 상태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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