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롤모델] 마스터 키튼 리뷰, 아빠와 딸 (feat. 스토이시즘)

싱글맨 2022. 3. 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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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은 남자의 이혼 이후 롤모델을 제시한다. 이전에도 매우 아끼던 작품이지만, 나는 이혼 이후에 이 작품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였다. 작중 키튼은 이혼을 했고, 딸을 슬하에 두고 있다. 이혼한 아빠와 딸이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가. 이 작품은 이 질문에 일종의 해답을 제시한다.

마스터 키튼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화로 탄생한 이미 30년전에 일본에서는 완결된 작품이다. 한국에서 12권으로 편집되어 완결된 것도 2013년으로 벌써 거의 10년을 채웠다. 2016년 마스터 키튼 Re-master로 추가 단행본이 출시되었다. 일본-영국 혼혈의 고고학자인 주인공 키튼은 학계에서는 좌절을 맛보는 현직 보험조사원이이자 SAS 출신 군 경력을 갖고 있는 탐정이다. 딸 유리코는 12권 기준으로 여고생이다. Re-master에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고학자가된 딸을 만날 수 있다. 1권에서 아직 어린 학생으로 등장하는 유리코부터 Re-master에서 장성하여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게 되는 유리코까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딸과 아빠의 관계가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 이 지점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리마스터 (2016)

80년대 후반에 시작한 작품이기 때문에 냉전 시대와 소련 붕괴 이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고고학자로서 주인공이 발굴하고자 하는 지역이 현재 루마니아 지역, 다뉴브 (도나우) 강 유역이므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배경이 많이 등장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있기 전까지, 루마니아나 조지아 같은 흑해 연안의 국가에 한국인이 관심을 갖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그 지역 관련 세계사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비중이 높은 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그루지야를 조지아로, 키예프를 키이우로 부르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의 전황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을 접하지 않은 20대 독자라면 이런 배경은 더 생소할 수도 있다. 

아버지와 딸은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딸이 커나갈수록 아빠의 고민은 커진다. 딸이 겪는 일은 남성인 아빠가 겪어보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혼하고 딸을 엄마가 양육하는 경우, 아빠 입장에서 딸과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항상 앞선다. 

키튼은 딸과 항상 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아니다. 탐정 일로 세계 각지로 출장이 잦으며, 영국에 머무르는 것이 기본이다. 드물게 일본을 방문하여 딸와 아버지를 만난다.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이던 키튼과 유리코는 Re-master에 와서야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픽션임에도 혹시 아빠로서 뭔가 배울 것이 있지는 않을까. 이혼한 아빠는 딸에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1. 키튼은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본인의 가설로 세계를 해석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다뉴브강 유역을 발굴하겠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빠른 길을 가지는 못하지만, 그 목표는 장애물을 만나거나 늦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딸에게 아빠가 '인정할 만한 사람' 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2.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리고 이혼한 전처가 자신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다고해서, 아이의 엄마를 질투, 험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전처와 아이의 양육을 두고 근거리에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아이 엄마와의 거리를 두되, 딸에게 엄마는 엄마로 인정하는 태도, 딸에 대한 관심과 전처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잘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교훈은 내가 100% 지지한다. 이 블로그의 이전 글에서도 여러번 다루었다. 이혼에는 나의 잘못이 분명히 있고, 전처에 대해서 분노의 감정을 가져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딸의 엄마에 대한 합리적인 관계 설정은 이혼한 아빠나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것이다. 

3. 극중 유리코는 엄마와만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일본의 학생이기 때문에, 일본의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시간이 가장 많고, 심지어 학생일 때도 엄마와 아빠를 만나기 위해 영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닌다. 여기서 배울 점은, 아빠를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만났을 때 충분히 밀도가 높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4. 힘이 강하거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판단 능력과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키튼의 SAS 군 경력은 위기의 순간에 본인을 지키는 수단이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물리적인 능력을 제공한다. 이런 '손에 잡히는 문제 해결 능력'은 딸이 아빠를 보는 포인트의 하나가 된다. 자기 몸과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전구 하나도 못 가는 아빠가 딸에게 인정받기는 어렵다. 

요약해보면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합리적으로 달성하고자하는 균형잡힌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키튼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잘 살펴보면 키튼은 스토이시즘 그 자체다. 스토이시즘을 한국어로 '금욕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것, 이것을 '금욕주의'라는 좁은 의미로 담아낼 수 있을까. 

키튼과 극중 인물과의 대화를 인용한다:

아빠가 바라는 딸과의 관계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작품 속의 한 장면이 심금을 울렸다.

내 딸이 나를 이렇게 바라봐준다면.

나도 그 날을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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