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신비아파트의 심오한 정신세계

싱글맨 2022. 3. 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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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로봇을 활용한 방위사업에 전념하던 시절이 한풀 꺾이니, 이제 우리 딸의 심오한 미스터리 정신세계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다. 투니버스에서 제작한 '신비아파트'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딸의 마음에 들었나보다. 공룡과 로봇을 거쳐, 이제는 귀신의 세계까지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아이들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보자.

맨 끝의 귀신 캐릭터가 장산범이라는 것 정도를 안다.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세계는 절대 함부로 깍아내리거나 폄하할 것이 못된다. 그건 그 짧은 시절 아이들의 정신세계이자 세계관이다. 부모 입장에서야 '아빤 (엄만) 공룡이 싫어...', 혹은 '귀신 좀 그만 찾아라.' 같은 핀잔을 주게 되기 쉽지만, 부모로서 이런 아이들의 세계를 평가절하하는 순간, 아이들은 부모를 평가절하한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감히 부모 따위가 함부로 말한단 말인가. 

딸 아이는 귀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 2주만에 보게 되는 딸아이의 이야기는 내게는 아주 재미있다. 물론, 갑자기 귀신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했고, 이야기의 맥락을 잘 몰랐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신비아파트는 귀신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로 우연히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추게 된 주인공과 100년을 넘게 산 도깨비 캐릭터가 사건마다 등장하는 서로 다른 귀신들과 상대하고, 종국에는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모 세대가 전설의 고향부터 최근의 웹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접한 흑진귀나 장산범 같은 어지간한 귀신 이름들을 다양하게 듣게 될 것이다. 

부모의 성향에 따라서는 귀신 이야기를 아이들이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접하게 되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이 프랜차이즈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딸 아이는 각기 다른 귀신들의 사연을 나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빠와의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열의 넘치게 설명하는지 대견해서 언어능력 습득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빠로서 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 내게 중요한 얘기가 어른들의 세계, 차폐막에 가로막혀 나를 유치한 녀석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 부모 세대와의 균열을 느끼곤 했었다. 


'아빠는 장산범은 들어봤어. 예전에 진짜로 있었던 괴물일지도 모른대....'
'이무기는 아직 하늘로 못 올라간 용이래요. 맞지 우리 딸?'

딸과 대화하면서 내가 한 발언들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동의와 공통점을 구하려는 중요한 아빠로서의 노력이다. 내가 맞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2주만에 만난 아빠가 자기가 하는 얘기를 들어준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그냥 내 느낌만으로도 아주 중요하다. 

누나가 신비아파트의 캐릭터를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아들 녀석도 옆에서 거들면서 분위기는 한참 달아오른다. 차 안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그마한 귀신 캐릭터가 어디론가 떨어져 시야에서 사라지면 울고불고 난리다. 그래도 너희들을 태우고 아빠집에 데려와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아빠로서 행복하다.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스르르 놓쳐버린 이 귀신 캐릭터들을 아이들의 손에 다시 꼭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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