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만큼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도 필요하니까. 흔히 Mancave 혹은 Man Cave라고 불리는 공간은 대표적인 나만의 공간이다.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어도 상관없다. 일반적으로 mancave로 검색되는 이미지는 게임룸이나 차고인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차고 정도가 집안에서 허용되는 남자의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30대 결혼한 남성이 가족과 살고 있는 20-30평대의 아파트에서 나에게 허용되는 공간은 없다라는 걸 발견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혼 사진이나 보통 여성의 물건이 들어가게 되는 안방 침실이 내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살면서 점차 느끼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커플이 느끼게 되는 거리감은 완전히 다르다. 설령 약혼한 사이라도 동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정한 거리와 연락하는 빈도 등으로 일정한 거리감이 유지가 된다. 결혼은 그 거리를 모두 없애는 것이 목적인 행사이다. 살만한 곳에 집을 구하는 것은 항상 어렵고, 그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이는 이 곳을 MTB 자전거 수리샵으로 만들기도 하고, 홈씨어터로 만들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은 집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집 밖의 다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의 대도시 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부부 생활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그런 경우가 있는지 근거 자료 같은 것은 없지만, 배우자가 이런 별도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여백 없는 생활이 신혼일 때는 괜찮지만, 결혼생활이 계속되면서 지속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Mancave라는 단어에 Ma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이것이 남성만의 문제인 것 같지만, 이건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다. '결혼생활이외의 나'가 뻔히 보이는데 그걸 자의반타의반 포기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아까울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잠깐의 신혼생활을 제외한 내가 기억하는 '결혼생활의 집' 은 사업장 시설이었다. 돈을 벌어오는 맞벌이 전사의 집, 그리고 가정경제라는 사업 이외의 다른 것이 허용되지 않는, 전 배우자가 사업장의 대표인 그런 곳이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그런 생활을 감당하는 것이 가치있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나의 그런 믿음은 반만 옳았다. 결혼 생활을 지속할수록 나만의 공간은 줄어들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서재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서재가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집 안의 서재는 100%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차 안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내가 도청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야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는 오디오룸을 가지고 있다. 환경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고 겨울에는 유난히 추운 곳이지만,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앰프를 청소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지친 내가 몸과 마음을 쉬면서, 취미가 일이 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당연히 나도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이런 자유를 이혼 후에나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이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 혼자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을 하고, 커피 로스팅을 해보고, 고장난 앰프들을 고치기도 한다. 이 곳에서 나는 이 블로그에 올가라 글들을 구상하고 써내려 간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이 나의 기회가 되었다. 내가 이 곳에서 하는 모든 활동들은 공용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때문에 공용 시설을 이용하는 이런 모든 활동이 불가능해졌을 때 나는 과감하게 이 곤간을 찾아내어 계약했다. 한 달 고시원 비용보다 적은 돈으로 나만의 자유를 구했다.
곧 올 봄을 준비하면서 이 오디오룸을 청소한다. 앰프의 모서리가 반짝반짝해지도록 마른 헝겁으로 닦아 나간다. 녹슨 부분들을 문지르고, 청소기를 돌려 깨끗하게 정리해나간다. 제습기의 물을 버리고,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갈아야 한다. 누가봐도 누추한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 혼자 생각하고 실행하는 나만의 일이 있어 행복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런 공간이 이미 있거나 없어도 행복하다면 매우 축하드린다.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데 한걸음 다가가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나도 오류 많은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공간을 꿈꾸고 있다면,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얘들아 지도랑 친해져볼까 (7) | 2022.03.05 |
---|---|
이혼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0) | 2022.02.14 |
이혼 후 심리상담에 돈을 써라. (0) | 2022.02.07 |
명절 연휴 고생하셨습니다. (0) | 2022.02.04 |
아이들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2) | 202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