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이혼 후 심리상담에 돈을 써라.

싱글맨 2022. 2. 7. 19:35
반응형

이혼에 대해서는 털어놓을 데가 마땅히 없다. 이혼을 하고 나서 겪는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말할 사람은 없다. 특히 이혼한 남성이라면. 특별히 남성이 더 불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혼은 누구에게나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주제일 수밖에 없다. 회사에 이혼을 얘기할 수는 없다. (이 주제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다. '절대로 회사에 당신을 이혼을 얘기하지 말라'를 참고하길 바란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이혼이라는 내밀한 이야기를 공적인 영역에서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 힘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가족에게 이혼때문에 내가 겪는 감정적인 부분까지 지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혼을 겪을 만한 나이라면 최소한 30대 이상, 이제는 부모님 세대의 가족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렵다. 부모가 내 얘기를 한 없이 들어줄 것 같지만, 이제는 부모 세대를 부양하는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모시는 노모에게 이혼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것인가, 혹은 아버님에게 못난 자식의 이혼썰을 풀 것인가. 손아랫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자식에게 이혼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것인가. 동생이든 조카든 자식보다 멀리 있는 가족이 나의 이혼 얘기를 들어줄리는 만무하다. 

친구들에게 이혼을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이혼을 겪는 나의 모든 사연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들어줄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친구이기 때문에 보이고 싶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만약 이혼을 겪은 사람이 친구가 적은 사람이라면, 이런 건 다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주변 지인의 감정적 지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이혼을 겪은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누구나 다 이런 방법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사실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해결 방법이 가능한지 자세히 따져보지는 않았다. 

남성이 이혼을 이야기하는 것에 더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혼적령기(?)의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약점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은 남성에게 하지 않도록 훈련받은 일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양육하는 이혼녀에 대한 동정심이나 법적인 지원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혼남에 대한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이혼남은 보통 나쁜 일로 뉴스에 등장하지, 훈훈한 이야기로 등장하는 경우는 대개 많지 않다. 

누군가 이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한 두 번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적어도 한 두번 정도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혼 직후에는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지나 이혼이 익숙해졌다가도,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나 지독한 혼자만의 싸움에 지쳐갈 때 나는 전문적인 도움을 찾아 심리상담을 했다. 나는 결국 돈으로 해결했고,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공적인 공간에서 이혼이라는 나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혼이라는 사건과 나의 감정은 상담실과 내 마음 속에만 있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당신은 아무런 문제나 약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내 속을 털어놓고 싶을 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 이 잠깐의 해방감이 이혼 후에 겪을 수도 있는 감정의 폭주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 이혼을 겪으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낼 수도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전 배우자와의 관계, 아이들의 육아 문제에 대해서도 상담을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혹은 이혼 후의 개인 상담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 경우에, 아이들 육아 문제에 대한 상담을 하는 다른 전문가를 소개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나는 그런 전문가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특히 이 방법은 이혼한 남성에게 권하고 싶다. 술자리에서 이혼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혼남은 언제나 제정신이어야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혼심리상담에는 돈이 든다. 그래도 지출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꼭 한 번이라도 권하고 싶다. 혹시 직장이나 소속된 곳에서 무료 상담의 기회가 있다면 활용하길 바란다. 회사라서 꺼림칙할 수는 있지만,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는 일정 수준의 비밀 엄수가 약속되어 있다. 이혼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특히나 드문 양육권자인 이혼남이라면 반드시 권하고 싶다. 

이혼에는 분명히 당사자의 잘못이 있다. 이혼에서 자신의 잘못 하나도 없이 이혼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혼한 사람의 정신과 감정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장난 것 중에서 복구할 것과 고쳐쓸 수 있는 것은 다시 써야 한다. 고장난 마음을 고치는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그 돈과 시간보다 고장난 마음은 분명히 더 가치있을 수 있다, 노력한다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