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발생하는 어떤 불이익 같은 것 때문에 이혼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당신이 알리고 싶은 당신의 모습만 나는 것이 좋다. 이혼을 굳이 알리는 것은 여러가지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나의 이혼은 세상이 신경쓸 필요가 없다. 세상은 나의 이혼에 대해서 알 권리가 없다. 나의 이혼이 어떤 법적 절차에 (예를 들면 재혼같은) 반드시 필요한 확인사항이라면 모르겠으나, 이혼 여부는 특히나 직업 전선에서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관계가 없는 것은 관계가 없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물론 이혼을 직장에 알림으로써 혹은 숨김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만약 회사에서 직원복지 차원에서 직원의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경우, 결혼기념일마다 받게 되는 이런저런 선물에 대해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마치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선물을 받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가 있는데, 크게 개의치 않아도 좋다.
대개의 당혹스러운 상황은 건강보험 같은 인사기록과 연말정산에서 생긴다. 건강보험상 피부양자로 등록된 자녀에게 주어지는 어떤 혜택이나 입학 및 졸업 선물 같은 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연말정산에서 기본인적공제 대상으로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자녀 의료비를 세제상 회사를 통해서 어떻게 처리할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법적으로 부양가족이 아닌 자녀의 혜택이나 공제사항이 있지 않도록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양육권이 없는 부모에게 생기는 혜택의 경우 정리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회사의 인사기록을 통해서 이 정보가 바뀌면서 회사에게 이혼을 알리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경로가 비슷하긴 하지만, 회사마다 인사절차나 담당자의 일처리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꼭 알릴 수밖에 없거나 반드시 적법하게 정리해야 할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회사가 당신의 이혼에 대해서 알 권리는 없다. 당신의 결혼/이혼 여부는 사실 회사의 관심거리 밖이어야 마땅하다.
이외의 이유로 회사가 당신의 이혼을 알 경우 좋을 일은 사실 별로 없다. 특히 회사의 인사부서 이외에 주변의 동료가 이혼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불이익이 있으면 있지, 이익이 생길일은 확실히 없다.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도 당신의 이혼 사실을 아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의외로 회사에서 결혼생활과 결혼생활에 수반되는 아이들 육아, 이사 같은 이야기는 동료들간의 단골 이야깃거리이다.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할 때마다 이혼당사자나 주변 사람이나 이혼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수밖에 없다. 분명한 편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 굳이 이런 서로 불편한 사실을 회사에 알릴 필요가 있는가.
혹시 이혼절차, 특히 조정이나 소송 같은 문제로 회사의 근태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그냥 행운을 빈다. 가급적이면 연차나 반차를 잘 활용해서 보이지 않게 막아야 하고 회사 사정상 그게 만만친 않다고 해도 가급적이면 회사에는 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정법원 일정으로 회사에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우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는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일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조력자에게 알리고 잘 해결하길 바란다. 어디까지나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혼을 알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혼을 회사에 알리는 문제로 검색되는 다른 블로그나 매거진의 글들을 보면, 이혼을 회사에 알리는 것이 이런저런 장점이 있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 이혼당사자가 회사에 배임이나 근무태만 같은 물적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회사에 당신이 개인사를 말할 정도로 정직할 필요는 없다. 특히 이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정직한 것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황당한 얘기도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에 이혼을 알리는 것이 장점이다', 뭐 이런 것. 이건 그냥 개소리다. 이건 그냥 잡지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채워넣은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 이혼 이후에 누굴 바로 만나는 것이 좋지도 않고, 2. 이혼 후 본인의 생존과 완전한 독립에 방해가 되며, 3. 회사에서 동료 근무자나 협력처 혹은 거래처에서 개인적인 만남 상대를 찾는 것은 직장인의 커리어에는 독이다. 냉정해지자. 이혼녀, 이혼남을 이성으로 만나려는 상대는 적다. 이혼 이후의 내 상태가 아직 완전치가 않은데 다시 누굴 만날 생각을 한다는 건 세상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아주 드문 경우이겠지만, 이혼 사실만으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아직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는 회사에 따라 이혼이 임원 승진이나 출장 발령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는 썰이 있다. 물론 이제 이혼이 흔한 일이고 구시대의 유물같은 인사 '썰'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과연 이혼에 얼마나 관대한 인사제도와 담당자를 가지고 있는가. 여러가지로 회사에 이혼을 알려서 좋을 일은 없다.
커리어와 이혼을 동시에 해결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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