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소고기가 있으면 먹이겠지만)
격려 차원에서 받을 선물이 있었고, 선물을 고르라는 메세지를 본 것은 이미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다 소고기 수량을 소진시킨 이후였다. 아직 갈비와 케익/베이커리류가 남아 있긴 했지만, 이 선물 어차피 단순히 소모하고 끝나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쓸모가 있는 것을 고르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인기게임 세트를 골랐다. 상당한 금액의 게임이라 7종이 넘는 게임이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게임세트를 골랐고, 그 만족감이 높다.
애초에 규칙은 상관이 없다. 다빈치코드의 규칙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규칙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가지고 놀기만 하면된다. 다빈치코드 블럭들을 비석치기 하듯이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 너무 귀엽다. 일단 숫자를 읽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한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본다.

어차피 아이들은 규칙을 만들면서 논다. 룰북이나 매뉴얼에 적힌 원래 게임의 규칙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때가 되면 이해할 것이다. 그게 이해될 때쯤 이 게임이 재미가 없다면 안하면 그만인 것이니 아빠가 굳이 억지로 어린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쳐가면서 스트레스르르 받을 필요도 없다. 다빈치코드 블럭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젱가나 알까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해진다. 다빈치코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플렌더도, 루미큐브도 아이들에겐 그저 재미있게 생긴 장난감일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규칙을 스스로 만들면서 노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건 배우는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놀라게 했다.
모두의 마블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게임일 것이라 생각했고, 주사위나 아이템들이 사이즈가 작은 것들이 많아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주사위의 점이 세 개가 넘어가면 뎃셈을 하기 위해 하나씩 목청 높여 세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날따라 아들 녀석이 '그 게임' 어디있냐고 캐물었고, 나는 모두의 마블을 아들 녀석에게 가르쳐 주었다. 주사위 던지는 법, 말을 이동시키는 법, 시드니가 어딘지, 지폐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처음으로 '은행'이라는 단어를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물론 '은행'이 뭐하는데인지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내가 단어의 뜻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녀석들은 그런게 있다라고 받아들였다.

결과는 더 놀라웠다. 가장 나이가 어린 아들 녀석이 게임을 이겼다. 물론 제대로 하면 우습게 세 시간이 넘어가는 게임을 정식으로 끝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버티면서 플레이를 했다. 아들 녀석은 로마, 베이징, 두바이, 게다가 푸켓과 하와이를 사들였고, 집을 지었다. 아들 녀석이 보여준 땅 욕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왜 처음에는 집 밖에 못 짓고 빌딩부터 지을 수는 없는지는 불만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들아, 아빠가 졌다. 딸 아이도 만만치 않았다. 이 녀석은 나와 아들이 게임을 하다가 뒤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살 땅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빠르게 방콕과 독도를 차지하고 추격해왔다. 저녁식사 시간이 아니었다면 게임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단순히 '아이들이 대견하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들과 딸은 자산에 투자하고 부를 일구는데 학력이 거의 필요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게임 내내 내가 아이들보다 나았던 점은 매뉴얼을 찾아 규칙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주사위의 숫자가 얼만지 빠르게 셀 수 있다는 것, 딱 두 가지였다. 엉성한 규칙으로도 아이들은 금새 나를 이겨먹었다. 확실히 나는 학교에 너무 오래 있었고,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 아빠로서 내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과 아이들이 이런 재미에 대한 감각과 자연스러운 능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생일 선물로 아이들이 책가방을 받은 것이 못마땅한 것도 이해가 간다. 왜 이렇게 더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고작 책을 넣을 가방에 만족해야 하는가.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 왜 작은 화면과 페이지에 만족해야 하는가. 추운 1월, 아이들에게 제대로 한 수 배웠다. 물론 욕심 같아선 두 세계를 다 알려주고 싶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게임하는 것을 금지할 생각이 없다. 나중에 크면 아예 체스나 콜오브듀티도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덧말. 나도 제페토를 해야 하나.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에게 배운다: 투자는 실행력이다. (feat. 모두의 마블) (2) | 2022.01.22 |
---|---|
연말정산 단상 (feat. 2022년 대선) (3) | 2022.01.22 |
당신은 이미 감청당하고 있다: 이혼 전 개인정보보호 기본사항 5가지 (1) | 2022.01.07 |
부부 공동명의 통장보다 중요한 것 (4) | 2022.01.05 |
삶은 여정이 아니라 과정이다: 신년 계획 세우는 법 (2) | 2021.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