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쌓아놓은 각종 무기들의 화력을 전부 합산하면 3차대전이 일어났어도 이상할 게 없다. 무슨 국제정세 같은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보유한 로봇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시즌'은 아이들을 상대로한 방위산업체들의 대목이다. 지구를 지킬 대량의 로봇을 사들여야 하는 임무가 아빠와 엄마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시즌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방위사업청이 된다.
이혼남인 내가 어릴 때부터 지구를 구하는 쫄쫄이를 입은 영웅들은 항상 외계인들로부터 지구를 구해왔다. 후레쉬맨과 독수리오형제부터 파워레인저를 거쳐 현대의 미니특공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역사는 유구하다. 역사가 유구한만큼 그 색깔이 잘 변하지 않는다. 빨강, 파랑, 노랑, 분홍, 초록. 미니특공대에 와서는 초록색이 2군 멤버의 색깔로 격하되고 검정색이 추가되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후레쉬맨 시절 대장이 빨강이던 것이 미니특공대에 와서는 조금 바뀌었다는 것. 현대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반영하여 지금은 이렇다할 대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다 시대의 산물이다.
글을 쓰는 이혼남이 비디오를 빌려보면서 이 쫄쫄이 영웅들을 응원했다면, 요새 아이들은 IPTV, OTT, 유튜브 플랫폼에서 이들을 응원하며 꿈을 키운다. 비디오 대여비용은 구독 비용으로 대체되었다. 일년에 법적으로 26번 아이들을 만나지만 슈퍼키즈 옵션의 구독은 필수다. 아이들 집에 올 때마다 매번 구매해서 보여주는 것은 애초에 어렵다.
지구를 구하는 최상위의 방위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방위사업의 규모도 엄청나다. 다음 사진을 보면 얼마나 로봇 대전쟁의 시대에 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니특공대의 펜타트론X와 더불어 헬로카봇과 또봇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 차세대 전투기사업이나 한국형 발사체 산업에 맞먹는 규모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로봇대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방위 사업의 규모는 다양하지만 대개 로봇 1기의 도입가격은 4만원에서 10만원 선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건 대중적인 모델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혼한 부모의 경우에는 방위사업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진다. 엄마쪽과 아빠쪽에서 모두 라인업을 도입하게 되고, 서로 경쟁이 붙기 때문이다. 라인업은 기본적으로 두 배가 되고, 방위사업의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된다. 이혼한 배우자가 사주는 로봇보다 더 좋은 로봇을 사주고 싶지 않은가. 지구 방위를 위해서 아빠보다 엄마가 더 많은 기여를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과 그걸 감당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또한 같은 라인업을 선물해선 안 된다. 똑똑한 우리 아들은 '엄마가 헬로카봇 사줬어, 근데 아빠 또봇도 괜찮아.' 라는 언급을 잊지 않는다.
지난 번에 나는 또봇을 도입하는 사업에 입찰했었고 잠시 아들의 마음을 일주일 정도 얻었었다. 그러나 이 또봇은 조기퇴역 당했다. 엄마 방위사업청에서 펜타트론X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미니특공대 시즌1의 주제가를 여덟시간 들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특공 X 파워를 무시한 아빠 방위사업청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엄마 방위사업청은 펜타트론 풀 변신 옵션을 도입함과 동시에 루시 인형을 별도로 딸에게 제공함으로써 두 아이들의 마음을 사는데 일조했다.
미니특공대 생산업체는 상황을 더 부채질하고 있었다. 풀 합체 로봇의 가격은 무려 27만 9천원선, 그리고 각각의 로봇을 벼로두 팔 뿐아니라, 변신세트까지 알차게 챙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로봇에 공룡을 접목하는 명백한 반칙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긴 역사적으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룡로봇이 따로 있고, 공룡이 접목된 2족보행 로봇이 따로 있고, 합체 로봇과 슈퍼공룡건, 애니멀캐리라는 수송부대 자원까지 별도로 판매되는 것을 보면서 부족한 방위사업청의 예산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결국 이번 크리스마스 율곡사업에는 슈퍼공룡건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딸도 동등한 선물을 주어야 하는데 슈퍼공룡건은 파란색상 한 가지인 것이다. 일단 딸의 선물을 별도로 시크릿 쥬쥬로 가기고 하고 슈퍼공룡건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시작하기 로 결정했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미니특공대 시즌1의 펜타트론이 아닌, 슈퍼공룡파워 시즌2의 애니멀트론급 로봇 시리즈를 크리스마스 내내 정주행하면서 슈퍼공룡건은 루시라고 분홍색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멤버가 파란색을 쓴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주자인 우리 딸마저 슈퍼공룡건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로서 다음 생일 선물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맞다. 사진의 저 빈칸, 내가 슈퍼공룡건을 들고 찍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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