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사원증은 어떻게 노예의 표식이 되는가

싱글맨 2024. 9. 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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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내장된 사원증으로 출입 처리를 하고 들어선다. 오늘 아침은 7시 45분에 시작되었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이다. 법정 노동 시간이 이 시점부터 기록된다. 메신저에 알람이 들어와 있다. 지난 일요일부터 일을 했으니, 내일까지 일하면 주 7일 근무가 된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으로 실수로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나는 내일 사업장에 출근할 수 없다. 

'사업장'이라고는 했지만, 나의 사업장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일하는 기업의 사업장이다. 일터, 캠퍼스, 사무실, 직장, 뭐라고 부르든 크게 상관없다.

직장과 직장인에 대한 여론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직장인 자체를 노예로 보는 시각과, 직장인을 노예로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편협하고 성공팔이들에 취한 '어린' 생각이라는 시각. 글쎼 누가 옳은지는 늘 그렇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개 직장인들은 직장인을 노예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본인의 고용주인 기업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이다. 연차와 휴가사용에 눈치를 보아야 하고, 노동 시간이 길고,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블라인드의 글들을 보면 그렇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의 첫 3년을 가장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독일과 미국으로 밥 먹듯이 출장을 다녔고, 현지에서도 낮에 일이 끝나면 한국 시간에 맞추어 팀 뷰어나 심지어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카카오톡으로 음성 회의를 했다. 그 때만 해도 아직 ZOOM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음성만으로 회의를 하고 업무 지시를 받아, 출장을 처리했다. 내 전공보다 영어가 나의 무기였다. 

그렇게 2019년 그 결과물이 처음 절반의 성공으로 판명되었을 때, 일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 결과를 취합한 사람이 그 절반을 특허로 묶어 실적으로 만들고, 그 팀은 버텨보려고 했지만 결국 해체되었다. 절반의 성공뿐이었기 때문이다. 절반의 성공은 절반의 실패이고 그건 결국 실패다. 늘상 있는 일이다. 나에게도 적지만 크레딧이 돌아오긴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그 때 확실히 멈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내가 이혼을 겪은 것처럼, 그건 분명히 벌어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프로젝트 종료 이후 정신은 휴식을 요구했고, 몸은 망가져 있었다. 같은 팀의 누군가처럼 우울증과 환각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2019년부터 겨우 주 40 시간만 일했다.

내가 왜 이 회사에 출근하는지, 기업의 이유가 아닌 개인의 이유를 대지 못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다. 내가 여기서 일을 해서 나와 회사, 그리고 사회가 얻게 되는 이익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하는 순간, 사원증은 노예의 표식이 된다. 밥 먹고 샤워하러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들. 마치, 내가 남편이고 아빠로서 해야하는 어떤 것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고 아빠니까 집에 있는 것이 서로 다른 위험도를 지닌 것처럼 말이다. 이전 문장을 잘 보자. 이건 조사 한 개 혹은 두 개의 차이다. 

여전히 노동자라는 계급이 노예를 대체하기 위한 사회적 계급이며 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노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 편으로 나는 노동조합이 보낸 이메일을 절대로 읽지 않고 모두 지우는 사람이고,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표어가 적힌 플래카드를 본다. 이건 내가 IMF때도 보았고, 지금 2024년에도 어딘가 모처에 가면 볼 수 있는 말이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노동자에게 원칙적으로 선택권은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떠날 권리. 문제는 어떤 노동자들에게 그 옵션이 사실상 없다는데 있다. 퇴사라고 적고 해고라고 읽는다. 누가 그 선택권을 없앴나. 저 표어는 나한테 선택권이 없다는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꼬박꼬박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권리가 나에게 있는가. 나는 그만한 성과를 냈는가. 2018년까지의 나는 그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2021년까지의 나는 별로 그렇지 않다. 내가 사장이어도 나를 고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2022년부터 최근 3년간은 그래도 bounce back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회사를 떠나서도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훌륭한 직장인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 라고 답할 수는 없다. 

떠날 옵션이 없는 직장인은 노예다. Labor와 Work는 다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퇴사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울 것 같다는 계산이 서면, 노예다. 난 일 잘하는 사람이 회사에 매여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이 곳에 있는 이유는 이 곳이 있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내 직장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지만 5년 넘게 그 곳에 있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사실 이걸 내가 구분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직장인들은 알고 있다. 자기가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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