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떠올려봐도 다수의 채널에서 진행하는 돌싱을 소재로한 컨텐츠로 미루어보아, 이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다면 괜찮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짐작하건대, 아직 아이가 없고 나이는 많지 않으니 지나간 결혼을 짧은 실수나 불행으로 생각하고 다시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이혼은 조금 더 나은 것인지?
이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핵심은 나이나 외모 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혼으로 삶의 한 고비를 버티어 냈는가가 문제다. 구체적으로 논해보면 이렇게 된다.
아이가 없고 상대적으로 결혼 기간도 짧았는데 이혼을 한 경우라면, 아직 본인의 가정을 꾸리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고, 그래서 결혼시장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일한 경우에 대해서 결혼 시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이혼이라는 상처만 남고, 아직 삶의 중요한 문제인 가족 형성이 해결이 안 된 상태로 나이만 먹는다.' 이 상태가 되어버린다.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과 이혼을 통해서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살지를 고민하면 된다. 사실상 그 문제만 남는다. 전배우자와의 관계와 아이의 관계를 걱정하는 것은 비록 깨어진 가정이지만, 어찌되었든 2세를 포함한 나의 가족이 형성된 상태에서 해결책이 나오면 되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당분간 연애도 생각없고, 결혼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여러가지 트러블이 해소된다. '나는 이미 저 과목은 시험을 봤다.' 라는 모드로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불편한 일이 많지만.
다시 연애와 결혼이라는 걸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데, 나이만 먹었고 이혼남 이혼녀 꼬리표가 붙었다는 건, 아직 진도를 못 나간 상태가 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내 결정으로 선택한 일이니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언제 이 진도를 나갈 것인가.
남성도 나이를 먹는다. 세월의 영향권에서 남성만 자유롭지 않다. 여성의 경우 의학적적으로 조금 더 타이트한 가임기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신체적인 조건은 같다. 모든 남성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기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보지 않은 길로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결국 가볼 것인지를 결정하기는 해야하는데, 나는 다시 연애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 막막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설령 경제적인 능력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유튜브나 티비에 나온 돌싱들이 요리하고, 외모 자랑하고, 돈과 직업을 뽐내는 것, 다 좋다. 하지만 제발 나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는 안했으면 좋겠다. 그건 방송에 출연할 20대 청년 이하에서 할 말이지, 내일모레 불혹인 아저씨 아줌마들이 할 말이 아니다. (합계 출산율이 0.7 언저리에 맴도는 나라에서 서른이 넘었으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저씨 아줌마다.) 다들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 한다고 해서, 세상이 성인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나에게 늦게 찾아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건 세상을 아주, 아주 우습게 보는 일이다.
41세 지인이 38세 여자친구와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그 이벤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일이고, 개인적으로는 축하할 일이다. 축하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나이 또래에 재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건 좀 막막하다. 재혼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이 너무 먼 길을, 41세에 결혼하는 나의 지인보다 더 먼 길을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과연 아이 없이 이혼을 한 사람이 겪는 일이, 속된 말로 애딸린 이혼남 이혼녀보다 더 나은지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적어도 애딸린 이혼경력자들에게는 앞날만 남는다. 그게 고통스럽지만 나와 자식간의 문제와 돈 문제만 남는다. 집중할 수 있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면 회복에 매진할 수 있다. 아이 없이 이혼하고 다시 연애와 결혼 시장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허락되지는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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