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문제든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은 없다. 세무 쪽에 트러블이 생기는 건 처음에 겪는 문제지만, 법인 돈을 엉뚱한 곳에 쓰지 않았다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렇게 정해진 문제 말고 다른 돌발 변수들이 항상 문제다.
2021년 지하 창고에 물이 들어찼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었고, 건물이 물에 잠긴게 아니라 배수 펌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차오르는 물을 감당하지 못한게 원인이었다. 건물주 임대인은 나이스했다. 싼 임차료에 있는 곳이다 보니, 건물에 들어 놓은 손해보험 처리를 풀로 받으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물이 닿기는 했어도 상품이나 설비가 상한 것은 없었다. 지하 창고에 보관하는 상품들이니 만큼, 썩거나 젖어서 못쓰게 될 물건이 없었고, 포장도 튼튼하게 되어있어서 물이 닿았던 물건들은 디스플레이나 촬영용으로 쓰면 될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설비의 금속 부분에 녹이 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보험사에서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 일은 하세월이다. 유난히 수해가 많았던 해라, 자동차나 살림살이가 침수된 경우가 많다보니, 보험사는 급한 손해 처리에 바빴다. 한 달이 넘게 지나 두 번쨰 전화를 받았을 때, 내게 책정된 보험금은 보험치리가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1일 매출이 적고, 손해가 작기 때문에 보상 금액이 작다는 설명이었다. 창고이기 때문에 상주 업무가 아니므로, 업무 수행 불가능으로 인한 보상 금액도 작았다. 사실상 녹슨 부품값의 1/3 정보 되는 보상 금액을 받고, 건물주와 통화를 하니,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이해할 수 있었다.
보험금을 더 받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2년이 지나 계약 연장을 해야할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건물주는 임차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그래도 임차료가 워낙 소액이니 세금계산서 발행 처리를 하지 않는게 어떠냐고 내 의사를 물어봤다.
나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냥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계약을 거절하고 퇴실하기로 했다. 주차도 안 되는 좁은 창고, 가뜩이나 매번 거미를 잡는 것도 신경쓰이는 일인데, 손해 보상도 적게 되는 곳에서 안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이유가 없었다. 수해 피해가 경미했다고 하더라도 건물주 본인의 말대로 정말 미안하고 안타까웠다면, 나에게 임차료 인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퇴실하면서 벽 한 쪽에 접착제가 묻어서 안 지워지는 것을 다시 페인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보증금에서 30만원을 까고 준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옮겨온 이 곳은 주차가 편하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관리비가 별도로 발생하긴 하지만, 오히려 문제는 옆 세입자의 소음 항의다. 창고에서 하역할 때 나는 소음을 가지고 민원을 운운하는 것이 이해도 안 되고, 왜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밤에 자는, 경기도에서 출근한다는 옆 세입자를 내가 배려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2년 조금 넘게 내가 배운 것은 하나다: 세상에 나이스하게 합의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개인사업자에게 그런 여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법인사업자에게는 그런 여유는 없다. 무조건 법대로. 지금도 웃는 얼굴로 항의하면서 돌려까는 옆 세입자를 돌려보냈지만, 특별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여기에 있을 날이 1년이 안 되게 남은 것이 분명해 보이고, 남은 기간 동안 옆 창고에서 소음이 발생하면 아마 내가 거꾸로 업무방해로 경찰 신고를 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내가 내 건물에 세입자를 들여도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정해져 있다. 나도 영세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세상에 규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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