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연말 모임 단상 part II (이혼남의 네트워크)

싱글맨 2023. 12. 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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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막바지까지 나는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직장에서 가장 열심히 해야하는 일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조직개편으로 싱숭생숭한 시기에 일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효과가 적은 일을 안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소속된 직장, '회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새로운 10년을 시작할 시기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기존에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면서 할 일은 분명하다. 이제 필요없는 사람들을 치워버리고, 내 일이 도움이 되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2023년까지 작동하지 않은 관계는 내년에도 작동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이란 단순히 만나는 사람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고장난 채널을 정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대개 그들은 스스로 떨어져 나가지만, 뒤엉켜 남아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에너지 활용이 불리해진다. 

어느 연말 모임자리에서나 누가 살아있는 사람인지는 금방 드러난다. 지금 개발 중인 프로젝트나 내년에 문제될 상표권, 특허, 권리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을게 있는 '살아있는' 접점이다. 무려 10년만에 만난 나의 친구는 이미 SaaS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중학교때부터 함께 안 사이이기에 만남 자체도 각별했지만, 천만 다행인 것은 나와 그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관련 없계에서 적당히 겹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중학교 친구에게 담백하게 나의 이혼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혼한지 3년 이상이 지나고, 상처가 적당히 아물면 이혼에 대해서는 굳이 드라마틱하게 굴지 않아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도 처가와의 관계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1)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과 (2) 친분뿐만 아니라, 유사 업계에 대한 의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그의 이직 경험에 대한 얘기는 나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다. 내가 이직할 경우에 어떰 잠재적인 위험이 있고, 특히 해외로 나갈 경우 환율과 생활물가 문제가 큰 덫이 된다는 사실도 정량적으로 (?!)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없으면, 아무리 오랜 친구 관계라도 40새 이후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관계가 가능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당연히 어렵다. 

반대로 죽어있는 나뭇가지들은 금새 드러난다. 나와 같은 연구실 출신이면서 만나면 함꼐 얘기할 것이 연구실 히스토리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우리가 컴퓨터 앞에서 밤새다 잠들던 얘기는 쓸만한 인사일 수는 있어도 2024년 이후를 사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개 이런 사람들이 꼭 만나면 할 얘기가 없으니까 물어보는게, '와이프는 어떠냐, 뭐하냐'는 질문이다. 지난 7년 내내 만날 때마다 지겹게 들었던 그 질문에 '신성한 연말 모임자리에서 얘기할 만한 일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적당히 하시죠.' 로 대답했다. 

5년후에 정년이 돌아오면서 집에서 꽉 쥐어잡혀 사는 거 뻔히 전해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한테 내가 할 얘기는 없다.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자기 모습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지금 무너지는 중이다. 앞으로 10년이 더 흘렀을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이 버티는 것말고 할 수 있는게 없다면, 그와 내가 함께 할 얘기가 뭐가 있단 밀인가. 최근 퇴사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다른 선배의 소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한 것이 그 다음 화제였다. 퇴사한 당사자는 47세, 버티고 버티다가 회사를 떠났다. 퇴사한 선배의 회사가 사양산업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는 것도 이미 5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잘 나서 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나를 봐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동정심마저 아까운 것이다. 그 사람이 말하는 주제를 들어보면 두려움을 읽게 된다. 자기보다 돈도 잘버는 아내가 두렵고, 본인의 머지 않은 퇴사가 두렵겠지. 그러니까 저런 주제들이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려는 안타까운 노력이...보인다. 당연히 나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음 달에 제출할 디자인 실용 신안과, 개발에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이론적인 방법론을 서로 물어보고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주제가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계묘년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해넘이다.

연말 모임이 끝나고 강남역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을 본다.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간다. 세상은, 사회는, 그리고 시장은, 당신과 나 누구에게도 뭔가 잘해줘야할 의무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회'로 통칭하는 인간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약한 고리를 먼저 끊어내도록 코딩되어 있다. 사람들은 뉴스를 접하고 감정적으로 '정의'에 대해서 반응하지만, 모든 인간은 지극히 정확하게 지금 자신의 위치가 당신의 가치에 걸맞도록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그 위치에 만족하느냐 아니냐'와, '만족하지 않을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밖에 없다. 그게 인간 세상의 네트워크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지상에 올라와 지는 해를 바라본다. 언젠가 글에서 그렇게 쓴 적이 있다. '빨리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 말이 여전히 놀랍도록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멀리 가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혼자 빨리 갈 수 있는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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