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이후에도 연애가 가능할까. 이혼 절차가 막 끝났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번 다루었지만, 이혼 직후에 어떤 연애 관계에 돌입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연애가 이혼의 이유가 아니었다면, 굳이 잔해를 처리하기도 바쁜데 다른 현장을 만드는 것이 좋을리가 없다.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다. 결혼하기 전, 2030 싱글로 연애를 하던 시절처럼 활기찬 연애 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거나 접근을 해오는 사람은 생긴다. 당연히 착각하면 안 된다. 지인이 되었다고 해서 연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니까. 선물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기면 좀 난감해질 수는 있다.
이혼남인 내 입장에서는 연애를 고려하지 않는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그래서 블로그 유입 키워드를 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자꾸만 '돌싱 심리', '이혼남 심리', '이혼녀 심리'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서 이 블로그에 유입이 되는 트래픽이 있다. 내가 그런 글을 작성해서 포스팅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검색을 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히 눈에 보인다. 내 짐작한대로 이혼을 겪어본 사람이 이런 검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검색의 주인공들은 싱글이라는 얘기가 된다. 같은 주제의 이전 글에서도 이미 썼지만, 싱글에게는 이혼을 겪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게 당연히 좋다.
다른 이혼한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이혼남의 심리가 이렇소' 하고 얘기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얘기만 할 수 있다. 내 입장에서 연애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 적어보면 이렇다.
1. 결혼 전에 연애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혼과 이혼을 이미 모두 겪었고, 그 과정에서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봤다.
2. 난 이미 아들과 딸이 있다. 자식을 두고 싶다는 의도로 짝을 찾을 필요가 없다.
3. 그래서 연애는 당연히 하면 좋은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필수는 아니다.
4. 이 말은 내가 연애를 선택적으로 연애를 안 하고 있다는 건방진 소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연애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내가 연애에 쓰는 시간과 돈이 아까울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연애를 안 한다고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는 뚯이다.
5. 20대때 연애를 못하면, 나홀로 광야에 서서 애타게 물을 찾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사막이지만, 지붕 아래 수도꼭지를 틀면 물은 나온다.
6, 따라서 내가 먼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데이트 의사를 물어볼 필요는 없다.
7. 일하는 곳, 비즈니스를 위한 모임에서, 연애 대상을 찾지 않는다. 40대 이혼남인 나에게 외로운 것보다 평판을 잃는 일이 더 두려운 일이다.
8. 실제로 내가 최근 여성을 만나게 되는 자리에서, 나는 만남의 목적을 공식적으로 고지하고 반드시 목적에 부합하는 말만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돈을 쓸 필요는 없는 자리들이다. (전부 회의비 처리 혹은 법인카드 처리 후 회의록 제출)
9. 이러한 조건들이 바뀌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시기가 왔을 때 나이가 더 많이 들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팔자다.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건 기회가 와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나는, 굉장히 직설적으로 내가 원하는 연애 관계를 정의해서 전달할 것이다.
이혼 후에 약간의 트러블들은 있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그래서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으세요?' 라는 질문을 여성으로부터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불쾌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고 웃는 얼굴로 꾸벅 인사만 하고 나왔다.
- 넥타이 선물을 받았을 때는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여성이 넥타이나 향수를 선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설령 선물을 한 사람이 전혀 이성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한 선물이더라도, 그 아이템을 선물로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게 전부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왜 싱글들이 탐색할 영역이 아닌지 보이지 않는가. 이것도 내 추측이지만, 이혼한 사람은 상대방이 어지간히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연애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다시,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가 없어서인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게 이혼을 겪은 사람 사이의 관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멀쩡한 싱글이 굳이 애써 껄끄러운 벽을 넘어야 할 필요는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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