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을 챙기는 일은 이혼남이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국가에 식량안보에 대한 책임이 있듯이, 남자에게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식자재를 구입하고 먹거리를 챙기는 일은 최대한 내가 내 손으로 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아이들이 먹는 것이다. 나름대로 나만의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고, 내가 직접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일이다.
식자재 구입과 끼니를 요리를 하는데는 엄마도 믿지 마라. 이건 이혼남에게만 사실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참이다. 그러나 특히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이혼상대자와 함께 사는 집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가 안전할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최근 몇 년간 있었던 배우자를 상대로 한 몇몇 강력사건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았다면, 남이 한 요리를 쉽게 입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식자재를 준비한다. 돈이 있어 유기농으로 살 수 있으면 최고다. 새해에 내가 직접 요리를 하는 횟수를 늘리고, 아이들에게도 라면을 끓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기 위해 면접을 앞두고 장을 본다.
토마토와 양송이를 산다. 파스타 토핑이 육류면 맛있긴 하겠지만, 너무 헤비할 필요는 없다. 듀럼밀로 만들어진 스파게티면을 사고, 크림소스 제작용으로 사용할 버터는 목초사육 (Grass-fed) 버터로 구입한다. 소스 농도를 보강하기 위해 소스를 따로 사긴하지만, 되도록이면 적게 사용할 요량이다.
면이 불꽃에 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큰 냄비에 물을 끓이고, 다 끓으면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서 면을 8분간 익힌다. 8분간 익히면을 빼어 프라이팬에서 볶으면 12분 정도 뒤 요리가 끝났을 때 적당히 익은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아이들이 먹는 크림소스 파스타에는 베이컨 대신 오리고기를 넣었다. 베이컨의 지방보다는 오리 기름이 더 나을 것이다. (당연히 오리 고기는 따로 구워야 한다.) 바질이나 다른 야채는 일부러 넣지 않았다. 아직, 라면의 건더기스프도 싫어하는 아이들이다. 사진 속의 크림파스타는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남은 것을 내가 먹은 것으로 여기에는 토핑이 없다. 마늘은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익혔다고 해도 깐마늘을 통으로 먹는 것은 아이들이 아직 버거워한다. 크림소스 자체는 우유를 쓴다. 처음 토핑을 볶을 때 버터와 올리브유를 섞어서 익히고, 면을 볶다가 우유를 적당량 넣어주면 크림소스의 기본이 잡힌다. 나중에 약간의 기성제품 소스를 섞어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그마저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나중에 아이들이 익숙해지면, 치즈를 녹여넣을 수도 있다. 전체 식자재를 구입하는데 6만원이 좀 안 되게 썼고, 아직도 남은 식자재로 연휴 전날인 오늘까지 집에서 요리를 해먹었으니, 대충 계산해보면 한 끼에 8000원 미만으로 먹는 셈이다.
이렇게 직접 만들어준 요리를 아이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주어 좋았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더 자주 아빠가 직접 요리를 해줄 생각이다. 아빠가 집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아빠를 기억할 뭔가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아빠의 맛을 기대해준다면 아빠로서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사진을 봐가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요리를 해줄까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마누라 없으면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건강을 헤치는 남자를 나는 경멸한다. 나보다 연배가 많은 남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미생에 나오는 대사였지 아마, '아빠로서 자기 건강에 소홀한 거 난 인정 못해.' 라는 부장의 말을 기억한다. 전적으로 동감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는 일은 건강의 0순위다.이혼을 했다고 해서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못챙기는 남자가 도대체 삶에서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이혼 후 양육권을 가지고 있어 딸 둘을 키우는 아빠도 알고 있다. 매끼는 아니지만, 그도 딸들의 식사를 만들어 먹인다.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지만,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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