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끝물 처리 방법

싱글맨 2023. 7. 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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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개편을 한두번 겪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걸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주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일을 적당히 해도 되는 조직에 가 있을수록, 그게 내 수준까지 결정하고, 곧 조직개편이라는 화살을 맞게 된다는 점. '평생직장' 의 시대가 아니라 '평생직업'의 세상이다라는 말은, 그냥 너도 언젠가 회사를 나가야 된다라는 말에 지나지 않다. 한 가지 행간에서 더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평생직장이든 직업이든 없지만, 내가 멀쩡하니 꼬우면 때려치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적란운이 터지면서 미친 소나기가 온다.

직장 생활이 의외로 투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소속된 팀이 궤도에 오르고 잘 나가고 있을 때가 이직 혹은 퇴직의 시점이다. 가까운 부서 이동 정도로 끝나더라도, 한참 분위기 좋고 주목을 받는 과제나 업무를 하고 있을 때, 슬슬자리를 비울 때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서 그 부서에 뼈를 묻는 실수를 한다.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 중반에 양다리를 걸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본사도 해외도 아닌, 개발자라기보다는 컨설턴트에 가까운 이 포지션에 들어온 것이 아주 훌륭한 선택은 아니지만, 꽤 쓸만한 것이었다. 내년을 별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항상 조직의 끝물에서 문 닫고 나오는데 익숙한 내가 또다른 끝물을 선택한 것일지 누가 알것인가. 지금 해야할 일은 연락이 오는지 안 오는지 안달복달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연락이 오든지 말든지 신경을 끄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마지막으로 이 여름의 끝에서 얻으려는 것은 내 프로젝트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나는 과연 내가 만들어낸 작품을 가지고 외국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이 있는가. 단순 '개발'이 아니라, '생산'과 '마케팅'을 실제로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벌써 내가 어디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나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압박을 견디고 뚫고 나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가.

그 마침표 너머에 대단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건 그냥 아주 최소한을 증명할 뿐이다. '돈이 되는 다른 작품거리를 찾으면 혹시 팔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도의 아주 막연한 수준의 증명말이다. 어려워도 이 일을 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방끈 길게 30대를 낭비하는 동안, 내가 뭔가 만들어 팔 수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으니 뒤늦게 부분만이라도 해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잘 만들었냐보다, 어설프게나마 만든 것을 보여주고 '팔 수 있느냐' 다. 내부 고객을 먼저 상대해야 하니, 이걸 보여주었으니 '나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라고 주변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아들과 딸은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팔아보는 일을 나보다 이른 나이에 경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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