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이혼남의 여름 휴가

싱글맨 2023. 8. 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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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여름 방학은 없다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한다. 여름에 어떤 일을 불태워서 해보겠다는 생각은 계절을 역행하는 방법이다. 건강 관리를 잘해서 여름을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여름을 피해서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 정상이고,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광복적을 전후해서 나름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2024년 이후의 구상을 다시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일단 6월에도 중감 점검을 하면서 확인했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근근히 이어가는 운동 같은 활동이라면 모를까, 굵직한 프로젝트를 여러개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더 어렸을 때도 잘 되는 경우는 잘 없었고, 이제는 그렇게 하면 건강을 해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가장 집중해야 하는 일에 꼭 하루 10시간을 채워 일하는 것이 포인트다. 

진행되는 일들을 순서대로 돌아보자.

1. 법인 사업
매출의 증가 속도가 더디다. 일부 매출은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어서, 플랫폼 정책에 따라 매출에 영향을 받는다. 매출이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을 따지기 전에 매입 세액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인 사업은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역의 성격이 있는 일이니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서지 않는다면 매출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품 발굴과 제품 개발에 투입하는 시간 자체가 적다. 머릿 속에 있는 제품을 구체화해서 샘플을 받는다거나, 만들어보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데, 판매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영업이 막혀있으니 회계상으로도 문제가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겨우 부가세와 주민세 처리같은 잡무나 처리했을 뿐, 법인 소유 내구재에 대한 감가상각이나 장기 재고에 대한 손실처리 같은 적극적인 회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인 매출 발생 1년 남짓, 세무대리인을 쓸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법인 사업 자체에 집중할 시간도 적은데, 그 시간을 쪼개어 내가 직접 회계 처리를 전부 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망한다. 이미 상담을 해준 세무사들은 내게 경고를 했다. 부가세의 일반 처리와 영세율 적용 매출분을 분리하는 것이 좋고, 그렇기 위해서는 기장대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이제는 미룰 생황은 아닌 것 같다. 

2. 개인 사업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벌써 2년 정도 시간을 썼는데, 성과가 기복이 심하다. 판매가 저조하거나 활동이 없는 것보다 힘든게, 기복이 너무 심한 사업이다. 1-2 개월 사이에 판매 활동이 집중되고, 나머지 10달 동안 판매가 없다. 심지어 파트너를 이룬 멤버들 간에 모이는 횟수마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 파트너십은 일종의 느슨한 동맹일 뿐, 절대로, 절대로 동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길게 고민할 일이 아니다. 연말까지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11월부터는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2023년에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사업이 2024년에 좋아질 일은 없다. 11월, 12월 두 달 동안 월간 정산이 불가능 수순이라면 폐기처분 하겠다. 폐기 후 잔여 사항은 법인이 인수하고, 필요하다면 법인 사업으로 전환한다. 

3. 투자
올해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 못했지만, 가장 활동이 일관적이고 뚜렷한 가시화가 있었던 활동이다. 이미 블로그의 여러 글에서도 소재가 된 적이 있지만, 세입자가 되었고, 세입자를 받았다. 연초부터 꾸준한 월세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신규 투자처에 대한 연구 활동도 꾸준이 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의 탭마다 수익이 다르긴 하지만, 수익화를 분명히 하고 있으면서 내가 즐기고 있는 분야다. 필요하다면 투자 관련 교육에는 돈을 더 태울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최근 투자가 부동산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부동산외의 다른 자산이 있는데도, 전체 대시보드를 정교하게 업데이트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빨간불이 들어온지는 오래되었지만,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신규 투자 자산을 개인으로 취득하는 것이 좋은지 법인으로 취득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게 고민이 되는 이유는 (1) 현금 흐름은 알고 있지만, 투자 가능한 유보금의 규모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2) 법인/개인 사업의 매출이 적기 때문이다. 매출의 규모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크레딧 라인의 종류와 규모가 달라진다. 

4. 직장생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에 출퇴근시간을 포함하여 최소 12시간을 남의 회사에서 보낸다. 그래도 내가 직장생활에 시간을 쓰려는 이유는 (1) 월급이라는 돈 때문이고, (2) 그나마 업무를 조정해서 이 회사가 아닌 내 회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일이 판매를 가속화하긴 하지만, 없던 판매를 만들어내는 기술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법인 사업의 구조를 짜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매출없는 법인에겐 아직 사치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문제는 내가 여기에 너무 재미를 붙였다는 점이다. 사실상 6월말부터 최근 6주간 여기 하나에 올인했다고 봐야된다. 이번 여름 휴가를 통해 내가 가장 반성하는 일중에 하나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직장생활을 소홀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적고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 일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최대의 집중을 하고, 개인적인 자원을 투입하는 '오버'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다. 쉽게 말해서 내가 잠을 줄여 해야하는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막다른 골목에 간, 아이템을 개발자가 공을 들인 일이라고 계속 해야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그 개발 업무의 shipping 속도를 빠르게 하고, 필요하다면 조기에 정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경영진에겐 없어지거나 만들어져야 하는 일의 어떤 가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통쾌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 일의 일부분만 내가 잘할 수는 있었고, 개발자들의 저항에도 직면했다. 

충실한 직장생활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지만,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이 일에 결국 나의 소유권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 투입되는 일이 하루의 1/3을 넘는 것은 곤란하다. 더군다나 출퇴근 시간이 정작 내 소유의 다른 일에 투입될 시간을 까먹고 있다면 이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결론:
이제 해야할 일은 각 파트에서 해야할 일을 정하되, 우선순위에 따라 이을 선별해내는 일이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부문마다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열거한 모든 법인과 일들을 걱정으로 안고 사니, 어깨는 항상 무겁고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나를 위해 적어 두고 싶은 말을 적고 싶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마음의 짐은 덜어도 된다고, 하지만, 저 많은 일 중에 분명히 포기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나는 직장에서의 성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괴로워 하고 있다. 안 되는 개인 사업은 접어야 할지도 몰라. 이제는 정확히 40이라고 아직 40대가 아닌 척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은 내가 너무 여러가지 일을 하려고 하기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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