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일종의 계약이다. 재무적 결정 (Financial Decision) 이란 말이다. 결혼이 재무적 결합을 전제로한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그 계약의 해지인 이혼은 금전 관계의 종식이지 사랑의 비극적 결말이 아니다. 오은영의 결혼 리포트에 결혼과 이혼에 대한 답은 없다. 결혼은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지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중요하고 결혼과 이혼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혼과 이혼의 본질을 놓친다. 결혼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본질을 말이다.
결혼하기 전 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감정과 결혼은 전혀 결이 다르다. 여기에 결혼의 허구성이 있다. 우리가 익숙해진 결혼문화는 사랑을 전제로 한 신성한 인간 대 인간의 결합을 이야기 하지만, 그 본질은 지참금에 있기 떄문이다. 자유의지에 기반한 사랑은 결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사회에서도 결혼은 가문간의 거래였고, 물론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이나 인도같은 아시아 국가들을 50년대까지도 그러했다.
결혼과 이혼을 논하기 위해 인류학적 지식을 길게 늘어 놓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결혼과 이혼은 항상 누가 뭘 잘못했고, 어떤 배우자가 마음을 다쳤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등등의 본질과 거리가 먼 헛소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사람의 특징', '반드시 이혼해야 하는 유형' 같은 류의 경제적 자립을 채널의 소재로 삼는 곳에 많이 있다. 포탈에 광고비 좀 쓴다하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나와서 결혼을 잘 유지하는 비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처럼 포장된 이런 컨텐츠들이 본질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모든 계약에는 소명 시효가 있다는 점이다.'
조건을 만족했든 하지 않았든, 모든 것은 유한하다. 법적인 결혼 지위를 유지한다고 해서 결혼생활을 실질적으로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한참 전 이 블로그에서도 황혼이혼과 졸혼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실질적인 결혼생활은 언젠가 끝난다. 대개 자녀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면 끝난다. 이제 부부는 같이 할 일이 없다. 외벌이였든 맞벌이였든 두 사람은 이미 공동생활과 육아라는 기한이 있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다. 목적이 없어진 조직은 해체된다. 그건 숙명이다. 결혼을 유지하든 이혼을 하든 이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은 끝난다. 모든 계약은 끝나니까. 다만 부부마다 정도와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혼은 그래서 마음이 깨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이혼으로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혼때문에 깨어진다. 서로 사랑하던 사이에 돈과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건 결국 사랑을 돈과 시간으로 바꾸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는 결혼하는 커플을 응원하고, 오랜 부부생활을 극복한 부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면서 어떤 목적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했고, 그 모든 확률을 뚫고 오랜 결혼생활 유지라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참고 봐주기 어려운 지점은, 아직도 결혼을 어떤 성스러운 결합이나 마음의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는 미디어 컨텐츠들이다. 어떤 이는 결혼과 이혼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고전을 들먹거리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 자립을 위한 배우자 고르는 방법을 설파하고, 어떤 사람은 더 훌륭한 배우자를 낚는 방법을 컨텐츠로 만들어 판다. 이혼을 앞둔 이들의 마음은 당사자가 알아서 챙기는 수밖에 없다. 결혼과 이혼을 앞 둔 사람들 곁에는 하나같이 그들의 결혼과 이혼으로 한 몫 잡아보려는 사람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판매전략은 분명히 배워봄직하다.
아무리 그들이 멋있어 보이는 소세지를 팔려고 해도, 나는 그 소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다. 결혼과 이혼은 통신사 가족 결합 상품과 해지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책임의 크기만 다르다. 계약을 앞둔 사람이 신경써야 할 일은 계약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유효한 계약인지를 따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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