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 을 검색하면 엄청나게 아프고, 뭘 먹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만 가득하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통풍이라는 병명이 붙은 유래나 퓨린이 몸에 흡수되어 요산이 되고, 요산이 결정화되어 관절의 약한 부위에 염증성 반응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며 통증이 발생한다는 병리학적 지식이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다. 그런 정보들이 대개 그렇듯이 통풍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통풍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얘기는 보통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고통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통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1월 1일 자정이 지나서였다. 뭔가 불편한 느낌에 잠에서 깨었고, 특별한 이유 없이 버릇처럼 화장실로 향했다. 침대에서 발을 내어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욱씬하는 느낌에 '어라...?' 싶었다. 낯선 통증은 아니었다. 사업장에서 오래 서 있거나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겪을 수 있는 흔한 종류의 통증이었다. 문제는 분명히 느껴본 통증이되, 그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리했나...?' 싶었다. 잠들기 전 업무는 유난히 발을 많이 쓰는 것이었다. 앉아서 발을 계속 움직이는 장비를 쓰고 있었고, 더군다나 운전까지 한 후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던 날이다. 발목에 무리가 가서 통증이 들어온다는 생각에 아파도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다리를 절며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다시 잠에 들었다. 오른발이 영 불편하고 움직이기 거북했지만, 곧 잠이 들어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문제는 아침이었다. 보통 이런 류의 통증은 아침이 되면 잦아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렇지가 못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통증은 족저근막염 같기도 하고, 발목 염좌를 당한 것 같기도 한 종류의 통증이었다. 오래 걸으면 느끼는 통증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하다. 아픈 발을 절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아픈 오른발에 몸무게가 온전히 걸리면 관절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통풍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발목을 삐었거나, 뭔가 어제 일을 하다가 다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발을 이끌고 출근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악화된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사무실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일어설 수 없었다. 병원행을 결정했다.
지난 번 통풍을 다뤘던 글에서 보여준 녹색 알약은 콜킨이라는 약이다. 그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의사는 통풍을 진단했다. 진단을 받은 그 날은 진짜 좀 서러웠다.
처음에 내가 통풍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통풍의 고통에 대한 묘사처럼, 바람만 불어도 아픈, 찌르는 듯한 통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통은 점점 악화한다. 발을 안 쓰면 그나마 덜 아프다. 문제는 걷기는 안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통풍의 고통은 걸으면서 악화된다. 바닥에 발이 닿으면 누가 발에 줄을 묶어 황소의 꼬리에 감아 당기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 절 수밖에 없다. 절룩절룩 걷다보면 고통에 둔감해져서 좀 걸을만해진다. 하지만 그건 함정이다. 좀 익숙한 것 같아서 더 걷기 시작하면 발목이나 엄지발가락 관절에 머무르던 염증이 오른발 전체로 퍼지는 느낌이 든다. 이걸 알 수 있는 건 발에 실제로 열감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걷에는 이상이 없는데, 저 속에서 뭔가 썩어서 열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어딘지 모르게 뜨끈해진다.
점점 걸으며 정도가 심해지면, 안 아프던 주변의 다른 부위가 아프기 시작한다. 하필 이 때 눈이 오는 날이다. 춥고 바람부는 날에 통풍의 통증이 올라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추우면 요산이 결정화되기 쉬우니까. 아픈 다리를 끌고 추운 거리를 배회한다. 평소에 걸어서 10분 걸리던 거리가 20분 넘게 걸리고 헉헉 대기도 한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관절에 무리가 가는 드러운 느낌이 든다. 한 쪽 발의 통증 때문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니 왼발이나 무릎 같은 다른 근육과 관절이 온전히 그 무게를 다 받아내야 한다. 통풍에 걸린 사람이 대개 비만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통풍도 영양과잉이 원인인 병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손잡이를 쓰지 않고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기도 힘들어지고, 욱씬거리며 통증이 정수리까지 전해진다. 통증 때문에 고통스럽고 요산이 대사질환이어서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이러다가 다른 관절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콜킨을 이틍 정도 먹고 병원에 다시 갔을 때, 혈액검사상의 요산 수치를 다시 확인해줬다. 의사는 사진 속의 페북트를 처방해주며 여차하면 남은 콜킨을 먹으러고 했다. 통풍발작이 왔을 때 비상약처럼 남은 약을 쓰라는 얘기다. 실제로 콜킨을 먹고 나면 그 다음날 상당히 개운해진다. 약을 먹었다는 것은 기억하면서 주사기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평소처럼 이것저것 처먹는다. 그러기를 이틀 정도하면 그 드러운 고통이 다시 찾아온다. 남은 콜킨을 먹어보지만 통증은 전처럼 그렇게 빠르게 없어지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발바닥에 큰 멍이 든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이 남아 있다. 걷기 시작하면 여지 없이, 그 묵직함은 통증으로 변해 돌아온다. 이제는 열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약간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떻게 아냐고? 통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발끈을 풀지 않으면 신발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방받은 페북트를 먹어보지만, 이건 만성 치료제로 천천히 요산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급한 발작이 왔을 때 효과가 있는 약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이제 서랍 속에 남아 있는 콜킨의 숫자를 센다. 소염제와 함께 포장되에 있는 녹색 알약은 달랑 두 개, 이 두 개가 남아 있을 때쯤은 항상 병원이 문을 닫는 주말이다. 끙끙거리며 절룩절룩 걸어 이 일요일을 버텨야 한다. 급한 마음에 통풍에 먹으면 안 좋다는 음식을 다 피해보려 하지만 소용 없다. 먹을 수 있는 건 밥과 채소다. 과자도 커피에 곁들이는 쿠키도, 고깃국이나 감자튀김도 먹으면 통증을 심하게 만들 것만 같고, 남아 있는 약봉지를 보면서 약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약쟁이가 된 것 같은 더러운 느낌도 든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보다 서너살 아래 혹은 위의 남자들이 계단을 두 개씩 내려가거나 오르는 모습을 보며 에스컬레이터 한 켠에 왼쪽에 몸무게를 싣고, 애잔하게 그들을 쳐다 본다. 왜 애잔한가. 갑자기 내가 그들보다 확 늙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운동을 세 시간 넘게 해치우고 라면을 두 개씩 끓여먹던 사람이다. 십중팔구 내가 통풍에 걸린 건 운동을 세 시간 넘게 하고 라면을 두 개씩 먹었기 때문이다. 첫 통풍의 통증이 익숙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어쩌면 나는 이미 2, 30대때부터 통풍을 겪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슬쩍 아픈게 사실은 정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고작 이제 40대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제는 안다. 통풍이 점점 더 심해지면 정말 인터넷을 치면 블로그에서 보던 '바람만 불어도 아픈' 통증을 겪게 될 것이라는 걸.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늘그막에 퉁퉁부은 다리를 질질 끌고 원로원 회의장에 나타났다는 책의 한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를 정복한 사나이가 겪었을 그 고통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알겠다. 그 때는 콜킨이고 페북트고 약 따위가 없을 때다.하지만 정말 아픈 건 통풍이 주는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이 아니라,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이다.
사실 얼마 나이가 들지도 않았는데 노인네가 된 것 같은 그 느낌말이다. 그렇잖아도 심장마비를 겪고 나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는 내게, 정말 몇 년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강에 대한 걱정과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갈 약값에 대한, 미래의 걱정까지 얹어진다. 나는 내가 특별히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이 더러운 기분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그 와중에도 무릎이 시큰거린다. 절며 걸었더니 자세가 안 좋아지고 이제는 왼발도 약간 아프다. 두 발다 통풍의 통증이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열패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 비행기를 태워줄 수 있을까. 아빠가 같이 뛰지도 축구를 하지도 못하는 아빠가 되지는 않을까. 나는 정말 나와의 약속처럼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통증이 시작된 이후로 운동을 제대로 한 날은 이틀뿐이다.
아직 통풍이 시작되는 단계라 그런지 찌개에 멸치 대가리만 늘어나도 발작이 온다는 정도의 통증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다. 2주동안 통증 사이를 오가면서 짐작이 되는 건, 아직은 고기를 먹었다고 아픈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많이 먹지 않으면 약간의 고기가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쿠키, 파이, 탄산음료 같은 단 것을 많이 먹은 날은 통증이 심해지는 편이었다. (이건 내가 겪은 통증의 예시일 뿐, 절대로 통풍에 대한 일반적인 전문가의 설명이 아니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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