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새해 해돋이를 하지 않는 이유, 겨울 바다

싱글맨 2023. 1. 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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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 딸에게

아빠는 새해 해돋이에 굳이 나가지 않는다. 정동진이나 포항 앞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새해에 대한 구상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새해에 대한 구상보다 중요한 것은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실행이고, 지난 해에 실패한 무언가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인간이 임의로 그어 놓은 날짜변경선을 넘어오는 해를 본다고 해서 갑자기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진 않는다. 바닷가에서 해 뜨는 것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아침 식사를 하고 와서 갑자기 달라진 삶을 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아빠의 22년 정리는 이미 가을에 끝났다. 아빠만 좋아하는 곳을 찾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났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빠는 바람을 거슬러 움직이면서 얼마나 조금씩 흘러나가는 시간을 느꼈다. 피 같은 시간, 금싸라기 같은 그 생명의 순간순간이 다시 느껴진다. 살아 있는 저항의 시간은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 아빠가 저희와 1년에 보내는 제한된 26번의 만남처럼, 아빠의 인생도 그렇게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쉼터


길을 걷다가 쉼터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 작은 케익 한 조각이면 아빠는 하루를 만족할 수 있다. 선인장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황량한 해안에 아빠의 생명이 거품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아빠가 해돋이 같은 걸 간다면, 너희들과 함께 가길 바란다. 아니, 해돋이 보다는 해넘이를 함께 하길 원하고, 너희들이 가고 싶어서 아빠와 함께 하는 동행길이길 바란다. 너희들이 장성하고 나면 아빠는 너희들과 1년에 26번을 만날 수 있을까. 아빠가 대학생이 된 후 너희들의 할아버지를 26번 이상 만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의 목적은 너희들이 아빠나 엄마 없이 살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다. 아빠가 가르치는 것을 다 믿거나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거라. 너희들의 성장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아야 정상이고, 너희들이 교육은 아빠나 엄마가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완수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아빠와 엄마에게 너희들만의 방식으로 반기를 들 때 비로소 시작된다. 절대로 너희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되, 절대로 너희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거라. 세상 모든 아이들의 잠재력을 담아 내기에 해돋이는 너무 빈약한, 일시적인 행사에 불과하다. 

너희들과 함께 하는 노을 구경을 상상해본다. 눈을 감고, 너희들과 바위 언덕에 올라 대서양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함께 보는 것. 아빠는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넘겨줄 것이다. 아빠는 너희에게 방해가 될 모든 것을 안고 삶을 마감할 생각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게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아빠는 알고 있다. 어느 새 칠흑같이 어두워진 바닷가에 부서지는 포말을 보면서 한 때 아빠가 2050년을 계획하려고 했던 미친 생각을 반성한다. 아빠는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이미 너희들이 태어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빠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다. 너희들과 함께하는 그 여행을 너희들이 한 번만 허락해준다면.

그 여행을 너희들이 허락해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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