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싱글맨 2023. 3. 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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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과 아들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말은 틀렸다. 이건 서로 다른 의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분명히 틀렸고, 거짓말이다. 좋게 봐줘야 그건 도덕책에 나온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 말을 오해한 것에 불과하다. 아빠로서 너희들에게 절대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고 가르치지 않겠다. 

세상은 너희를 이해할 의무가 없다.

안하무인으로 세상을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알라는 얘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평등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라는 말은 사실 '(아주 제한적인 환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라는 말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버전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체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에 불과하고, 이걸 실전에서 적용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에는 분명히 사람 밑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으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 몰라도 일하는 자에게 지불되는 가격은 분명히 자리마다 다르며, 사람마다 겪게 되는 운의 크기와 노력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겸손해진다. 분명히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비로소 시작점에 설 수 있다.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내가 투입할 수 있는 노력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크게 오해하고 잘못 사용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니, 누가 나보다 잘나가는 꼴을 보면 나도 같은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착각한다. 비슷한 버전의 말로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기회의 균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 같은 말들이다. 피해의식을 갖는 것, '나는 피해자이고 가장 힘들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고통의 크기'에 비례한 보상을 원하는 순간, 겸손과 성장을 던져 버리게 된다. 

너희들이 학교에서 조금만 머리가 굵어져도 불평등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커나가는 속도를 보면 둘 다 4학년이 될 때쯤 세상의 내재된 불평등함과 폭력성을 알게 될거다. 너희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걸 참거나, 남을 괴롭혀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있을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과 도덕과 선생님의 권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거다. 그건 매우 수동적으로 세상을 사는 태도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면 아름답게 살 수는 있겠지. 아릅다운 삶이라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아름답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히 너희들을 예뻐해 줄 이유는 없다. 너희들이 조금 컸다고 해서 너희들의 의견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거라. 세상은 당연히 너희들을 거절할 것이다. 너희들이 의견이 중요해지려면 너희들이 거절을 당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해서 결과를 내야할 것이고, 그건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일어나는 일이다. 

어느 분야나 일정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매우 소수다. 파레토의 법칙에 대해서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오직 소수만이 성공하고, 성공할 만한 분야를 골라내는 일부터 너희들이 실제로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여정이다.'라는 말도 틀렸다. 삶은 여정이 아니라, 내가 집중하기로 한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 과정'이다. 여정이나 과정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렇게 단어를 헤프게 쓰는 것이 너희들의 인생을 좀먹는다.

여정은 집중할 대상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이고, 과정은 어떤 결과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 농도가 높은 노력을 짧은 시간에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정과 과정은 다르고, 여정은 인생을 소비하지만 과정은 인생을 만든다. 주의사항: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희들이 훌륭한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너희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딸아 언젠가 네게, 좋아하는 것 중에서 뭔가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고 얘기했다. 나도 안다. 지금 당장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는 것을 즐기는 딸과, 아빠에게 안겨 노는 딸에게 얼마나 이르고, 한편으로 잔인한 말인지. 하지만 딸아, 너의 재능이 어떤 분야의 리더십이 될 지 너는 골라야 한다.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아들아, 아직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너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너는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엄마의 얘기는 무시하거라. 그건 군대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다. 아빠는 오직 운이 좋았기 때문에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훈련만 받고 끝났을 뿐이다. (아래의 컵이 깨진 건 안 좋은 징조다.) 그리고 총탄과 미사일이 오가는 것만 전쟁이 아니다.

Chipping at the edge of the cup may say that the world says war out loud.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들과 평소에 떨어져 지내는 아빠로서 너희들을 예뻐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나가도 너희들은 괜찮을거야.' 라고 얘기하는 아빠보다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어떻게 칼을 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아빠가 되어야 하니까. 너희들이 아빠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그건 너희를 약하게 만들 뿐이니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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