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모든 사람의 누나가 될 필요는 없다.

싱글맨 2022. 8. 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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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딸에게,

아빠는 크게 네 걱정을 하지 않는다. 너희 둘 모두 이미 완성되어 태어났고, 특히 딸인 네게는 엄마나 아빠에게는 없는 균형감각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너는 너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떤 삶을 택할지, 어떤 사람이 될 지, 모두 부모가 말해줄 필요가 없다. (직업 선택 같은 걸 얘기하는게 아니다.) 네 엄마나 아빠가 조금은 극단적인 형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너는 그렇지 않다. 

빨간망토 우리 딸

딸아, 아빠는 너를 지켜보면서 네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 지켜보면 너는 자연스럽게 중심축 역할을 하더구나. 터울이 크지 않은 동생을 돌보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려는 것이나, 이미 놀이터에서 너보다 어린 아가들을 끌고다니면서 노는 것이나, 그러면서도 엄마나 아빠가 하는 말을 잘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너는 이미 자연스럽게 맏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아빠가 맏이였기 때문에 잘 안다. 그리고 이건 네 엄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살면서 너만의 '여유'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최적의 답을 찾으려는 태도는 가끔 스스로의 여유를 포기하거나 권익을 희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건 아빠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너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면서 꼭 너만의 휴식을 찾길 바란다. 네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라.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만큼 너 스스로를 돌보고 모든 책임을 더 지려고 하지 말아라. 모든 사람의 누나가 될 필요는 없다.

아빠는 너희들이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둘 다 엄마와 아빠가 싸웠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지. 언젠가 너희들이 그런 말을 했었단다. 부모가 너희들의 일정을 얘기하다가 이혼 전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을 때, 유난히 동생보다 네가 기뻐했다는 걸 아빠는 기억한다. 부모들의 부족함으로 생긴 이혼이라는 짐이 너희에게, 특히 네 어깨에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네가 아빠와 엄마의 화해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벌어진 일은 부모의 책임으로 남겨두거라. 절대로 부모의 과오를 너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내면화하지 말길 바란다. 이건 엄마와 아빠뿐만 아니라, 네 주변의 모든 가족과 친외척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엄마의 일은 엄마의 일, 아빠의 일은 아빠의 일, 네 동생의 일은 동생의 일이다.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선에서 끝내라. 배려와 책임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때로는 너도 어쩔 수 없이 네 권한과 책임 밖의 일이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될거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 바깥에 있는 것 때문에 네 삶의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중심축에 너무 큰 바퀴를 걸면 바퀴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법이다. 네가 이걸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받아들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곧 십대가 되면서 네 스스로 그걸 버거워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이란 대개 뭘 몰라서 벌어지는 일보다 알면서도 못챙기는 것 때문에 생기는 일이 더 많다. 그러니 어린 너에게 너무 어려운 말이겠지만,

내려놓는 방법을 배우거라.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어야 네가 오히려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다. 이게 특별히 너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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