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에게,
예전 사진을 둘러보다가 찾았다. 아빠가 이걸 찍어두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지금은 뜨거워서, 비가 와서 나가지 않고 있지만, 너느 놀이터에서 모래를 한 가득 모아놓곤 했었다. 특별히 모래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벌써 두어 해가 되었다.
한참 그득그득 모아놓은 모래더미 옆에 어떤 여자아이가 같이 놀 심산으로 네게 접근했다. 그리고 '같이 놀자', '내가 도와줄까' 라고 하면서 네 모래더미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 그저 지켜보던 너는 모래의 상당 부분을 갈라가려는 여자 아이의 손을 보고 '저리가'라고 말했다. 여자아이가 나이를 들먹이며 '너 몇살이야'를 말하자. 너는 소리를 빽 질렀지. (나이 같은 건 네 거냐 내거냐의 문제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잘했다. 그대로만 하거라. 다음에도 그렇게 응징하거라. 아빤 네가 자랑스럽다.
네가 겪은 일들은 늘 벌어지는 일이다. 같이 놀았다는 이유로 제 몫을 챙기려는 자들을 좌시하지 말아라. 그걸 주고 안 주고는 네 맘이다. 너는 그냥 네가 모아놓은 모래더미를 통째로 주고 돌아설 수도 있었다. 네가 그게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너의 자유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그건 '네 것'이다. 네가 포기하기 않기로 한 이상 너는 도적을 무찌를 권리가 있다.
아무리 어려도 네 것에 손을 대는 자, 도적이다. 아이들 노는 데 네 것 내 것이 어디있냐고 말하는 자들, 그들은 도적의 애비에미들이다. 아들아 나중에 네가 동의하든 안 하든, 세상에는 이름표가 붙은 것들로 가득하다. 땅과 물에도 하늘에도 이름이 붙어 있다. 아빠도 안다. 사람이 빈 땅에 금그어 놓고 자기거라고 우기던 시절부터 뭔가 세상이 잘못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걸.
하지만 그게 옳든 그르든 네 것은 네 것이다. 네 이름과 권리, 소유권을 포기하지 말아라. 조금 나이가 들면 너도 '명의'라는게 뭔지 알게 될 것이다. '훌륭한 의사' 따위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옳은 사람이 세상 일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많이 가진 사람이 결정한다. 아빠는 너와 네 누나에게 이 잔인한 현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사랑과 정의를 너무 강조해서 욕심과 욕망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덧) 이 글은 아들 네게만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 누나에게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을 말해줄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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