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과 아들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아빠가 글을 쓰는 시간은 2022년 2월 18일 00시 53분 (한국 시간)이다. 너희들이 언제쯤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월 18일 이후 곧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아빠의 이 예상이 틀려서 빗나가길 바란다.
세상에는 '전쟁' 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에 벌어지는 전쟁은 너희들과 아빠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라는 지구 반대편까지 절반보다 조금 더 가서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전쟁은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고, 한 명이나 두 명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는 일이다. 문제는 이 전쟁이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앞으로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곳곳에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10년은 너희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분쟁이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아직 가르쳐줄 기회는 없었지만 너희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고, 한국은 아직도 전쟁중인 나라이다. 남북한간의 군사적 충돌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고, 바다 건너 일본이라는 나라와도 물리적 충돌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400년간, 중국은 약 3천년간 한국을 털어먹은 나라들이다. 조만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한국에서도 군대를 동원하게 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너희들이 한국에서 커갈 수밖에 없는 한, 이 현실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늘 그렇듯이 아빠가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지만, 혹시 너희들이 한참 후에라도 이 글을 읽을 경우를 대비해서 적어둔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이 글을 읽고 세상을 읽는데 사용하길 바란다.
너희들이 곧 다시 아빠를 만날텐데, 아빠는 특별한 것을 사놓으려고 한다. 거실 바닥만한 지도를 사 놓을테니 이번에 오면 구경하길 바란다. 아빠가 너희한테 뭔가 아빠가 가르쳐주고 싶은 것을 너희들이 원하지 않는데 말을 할 생각은 없다. 지도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 그냥 가지고 놀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땅의 모양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은 신기하고 멋진 일이지. 아빠는 항상 지도라는 것에 매료되었단다. 하지만 한편으로 힘겨루기의 역사와 피가 흘려진 지형을 보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오싹한 일이기도 하다.
너희들이 전쟁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아빠가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너희들이 뭔가 물어본다면,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장하지 않고 얘기해주는 것이 전부일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모스크바 시간은 오후 7시 정도, 전쟁은 빠르면 내일 아침에도 일어날 수 있다. 나중에 너희들이 이 글을 읽고 다시 아빠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날 아빠가 무얼 했는지 다시 물어보길 바란다.
나의 아들과 딸, 너희들과 오늘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전쟁에 대해서 아빠와 아빠의 아빠와 아빠의 엄마가 겪은 이야기를 다시 해주도록 하마.
건강하거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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