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막내에게 아빠가

싱글맨 2022. 1. 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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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놀이터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그 날은 날씨가 추워서 누나 없이 너 혼자 나간 날이었다. 처음에 모래 장난을 하면서 잘 놀았었지. 아빠랑 같이 모래를 모아 쌓기도 하고.

하지만 그 날은 워낙 추운 날이었고, 놀이터에는 다른 애들도 많이 없었어. 가끔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애들도 우리 아들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나 형들이 많았다. 그나마도 워낙 적었고, 바람이 불면 추운지 다들 그냥 놀이터에 나왔다가 돌아가 버렸지.

바보 멍청이

놀이터에서 같이 놀 사람이 없고 누나도 없자, 갑자기 약간 침울해지기 시작했었어. 아빠는 처음에 이유를 몰랐단다. 급기야 너는 놀이터에서 혼자 걸어 나가버렸고, 아빠가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너는 한동안 아빠 방에 들어가서 혼자 있었구나. 처음에는 네가 졸려서 자는 건 줄 알고 일부러 너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빠가 방에서 나가 있었다. 그런데 이내 가끔 거실로 나와서 티비도 보고 들어가고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기분이 풀렸는지 이내 아빠와 할머니에게 다시 말을 하더구나.

아빠는 처음엔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이내 알 수 있었다.

누나가 자연스럽게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을 몰아가면서 노는데, 지금까지 너는 누나를 따라 다니면서 놀면 되었을거야. 그런데 막상 누나도 없고 같이 놀만한 사람이 없자, 아들아 네가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아직은 어린 네가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경험했달까. 생각해보면 집에서도 네가 혼자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누나가 옆에 있고, 누구든지 엄마나 다른 어른이 항상 있겠지. 오늘 같은 혼자 있게 되는 날은 네게 아주 드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아빠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놀아주었어야 했는데. 그 날 아빠가 그네를 밀어주고 함께 모래 놀이를 한 것 이외에 조금 더 아빠가 놀아줄걸 하고 후회한다. 사실 아빠는 처음에 네가 왜 그러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얼 하고 놀려고 할까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나와 함께 놀이터에 나왔을 때 너 뿐만 아니라 누나를 같이 봐주고 놀아주기 위해서 보통 아빠가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너와 캐치볼 같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더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들아 너도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 혼자 뭔가를 해내는 시간이 사람을 만든다. 이것은 네 누나라고 피해갈 수도 있는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 너는 남자이기 때문에 더 잘 배워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 있을 때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을 하든 혼자 있는 시간이 너를 만든다. 그 시간의 무게가 괴로운 사람이나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는 사람은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 너 혼자만의 즐거운 일을 찾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은 결국 네가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어린 네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네가 언젠가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고 믿는다. 다음에는 아빠랑 놀거리를 찾아보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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