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막지 않는다. 일정 부분 이걸 방조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몸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건 나의 부모님 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입에 티비 좀 고만 보라고 말했던 것도, 사실은 그들의 죄책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애들이 티비라도 보고 있는게 그들이 덜 피곤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기기가 티비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책을 그렇게 읽어달라고 조르던 딸아이가 책이 시시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딸아이는 나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끝없이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딸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아이다. 책의 내용을 반복하여 듣고,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만든다.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너무 귀엽다. 머릿속의 고민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딸은 끊임없이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나의 딸이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뭔가 망설이면서 이야기를 멈추면 나는 절대로 재촉하지 않는다. 딸의 고민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자기가 들은 얘기를 재구성해서 뭔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모든 정신력을 쏟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딸은 나보다 더 훌륭하다. 왜냐하면 들은 얘기를 그대로 쏟아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딸이 이제 더 이상 어린이 동화에 흥미를 못느끼고 시시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조건 뭔가 잘못되었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책이 싫어져서가 아니라, 이제 그 책의 내용이 더 이상 딸이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 들어간 딸은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요컨대 딸아이는 입력 (input)에 의존하는 편이다. 아직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는 조금 서투를 수 있어도, 딸아이가 세상에 요구하는 입력의 수준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다. 그리고 분명히 이런 경향은 아빠인 나 말고도 제 어미를 닮았다. 아이들의 교육용 영상기기와 티비라는 디바이스에서 이제 스마트폰으로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이건 어떻게 더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어른인 나에게도 영상은 내가 모르는 분야를 빠르게 배우는 툴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관심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를 배우거나, 예전에 알고는 있었던 분야를 빠르게 확인하여 배우는데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무언가를 배우려면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책을 통한 밀도가 높고 깊은 학습과, 실습 혹은 연습이다. 후자는 컨텐츠의 제작에 해당하고 딸은 지금 연령 수준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 더 농밀한 배움과 집중을 위해선 책이 필요하다. 결론은 하나: 더 재미있는 책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이제 딸은 슈퍼토끼나 슈퍼 거북 같은 이야기는 이미 졸업했다. 어지간한 일반 티비프로그램은 충분히 이해와 공감이 가능한 수준이다. 책걸이를 할 시간이고, 딸 아이에겐 새로운 책이 필요하다.
놀라운 건 아들 녀석이 이제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만났을 때, 슈퍼거북과 슈퍼토끼를 신나게 읽어 주었다. 이것도 정확히 말하면 아들 녀석은 내가 읽어주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녀석은 자기가 글자를 일고 소리를 내는데 관심이 있었다. '슈퍼거북', '등껍질' 같은 단어를 소리내어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심지어 차를 타고 집으로 데려올 때면 도로에 있는 간판과 표지판을 모조리 읽는다. 누나와의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고, 나는 이런 차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딸아이의 문자 습득은 워낙 빠른 편이었고, 아들 녀석이 몇 년의 나이 차이 때문에 누나가 갔던 길을 이어 가고 있는 셈이다.
아들 녀석은 누나와 다른게 한 가지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녀석은 출력 (output)이 먼저다. 먼저 자기 수준에서 아는 것들을 늘어 놓고 그 다음에 배운다. 이건 제 누나와도 다르지만, 제 부모와도 다른 지점이다. 욕심이 많다. 제 누나의 이야기를 막고, 심지어 다른 아이들과 놀 때도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한다. 그림을 그려도 종이 한 장이 전부 다, 벽 하나가 전부 다 자기가 그림을 그릴 공간이다. 고민하지 않아도 이 녀석은 자기가 원하는 걸 풀어놓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이걸 막을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녀석이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 녀석은 스스로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자기가 한글을 읽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누나와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에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좋다. 아빠가 얼마든지 읽어주겠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빠인 내가 해줄 일은 그걸 장려함과 동시에, 책이나 영상으로 배운 걸 적용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일, 세상 일이 머리와 입만이 아닌 손발과 몸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다음에 애들에게 해줄 것이 정해졌다. 이제 집에는 성인용 책이 꽂힌 책장과 성인용 규격의 축구공, 줄넘기, 악기 같은 걸 집안에 들여놓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공책에 글자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계속 하는 일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액자로 걸어올려달라고 얘기한다.
결론: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과격하게 막을 생각이 별로 없다. 대신 아빠가 스마트폰을 어떻게 생산재로 활용하는지 보여줘야겠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 대신 어떻게 스마튼폰에 말하고 글을 쓰는지, 내가 그린 그림이 어떻게 스마트폰을 통해 웹에 올라가는지를 보여줄 생각이다. 그래야 스마트폰 중독에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이 블로그는 그 일환이기도 하고, 아마도 자연스럽게 나도 유튜브 활동을 할 수박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이 인터넷이라는 세상을 통해사맛보게 되는 세상은 아주 자극적인 세상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빠는 아이들이라는 구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이 경쟁은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엄마에 비해 아빠는 쉽게 잊혀진다. 이혼한 아빠라면 더.
여기 스스로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스마트폰을 막을 일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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