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2021년 마지막 날, 아빠가 보내는 편지

싱글맨 2021. 12. 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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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우리 아들,

아빠는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서 좀 외딴 곳에 나와 있단다. 여기는 아무도 없고 아빠 혼자 있다.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든다. 이제 너희들도 곧 한 살씩 더 먹게 될 거고,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너희들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거다. 

하루씩 살아나가면서 우리는 외부 세계에 항상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살피기 위해서 나의 에너지를 쓰다보면 정작 왜 그걸 하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잊을 떄가 있다.

겨울바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렇게 나의 목소리를 다시 귀기울여 들어보는 시간이다. 아빠가 겨울바다를 보면서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볼 뿐이다. 물론 잡념이 생기기도 한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너희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1년동안 너희들이 26번 보다 조금 더 아빠를 만나면서 함께 했던 사진들을 돌려본다. 너희들이 그린 그림, 식탁 위에서 춤을 추고, 새 옷을 입고 아빠한테 자랑하는 모습, 할머니와 장난치는 모습, 벽과 바닥에 온갖 밀가루 반죽을 붙여놓고 벽지에 낙서를 하던 너희들의 모습, 이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립다. 며칠 후 너희들을 다시 만나겠지만, 없으면 항상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너희들에게도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그건 아빠가 너희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뭔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일도 많을 거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그 상처에 굴복하고 자신을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 놓는 일이다. 아빠가 너희와 함께 살지 않는 것도 너희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아빠가 너희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너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아빠나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말아라. 학교나 직장이나 국가가 원하는대로는 더더욱 살지 말아라. 너희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살길 바란다.

그러려면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혼자 겨울 바다를 본다고 해서 2022년의 새로운 계획이 갑자기 샘솟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안가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걸 보고 있으면 파도 너머로 조력과 바람이 느껴진다. 아빠가 혼자 바다에 오는 이유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이제 어두웠던 아침이 지나고 해가 떠오른다. 올해의 마지막 일출이지. 해는 사람과 상관없이 뜨고 지지만, 굳이 날짜를 구분하여 저 해를 보내면서 너희들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아빠는 행복하다. 

새해에도 행복하게 너희들을 만날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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