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이혼하고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

싱글맨 2025. 6. 12. 18:23
반응형

이혼 후에 반드시 이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전배우자의 흔적 같은 그런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당연한 경고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법적인 이혼은 간단하다. 재산분할 같은 진통이 있을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해도 언제 끝나느냐의 문제일 뿐, 결국은 끝난다. 이혼 후에 그렇게 멀어지게 되는 것이나, 당연히 거리를 두게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혼 후에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복수심, 혐오, 그리고 어제의 나다. 

혐오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쓴 적이 있다. 이혼한 전배우자를 떠올리며 여성이나 남성 혐오에 빠지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혐오만이 아니라, 복수심도 버려야 한다. 그 흔히 말하는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잘 살겠다.' 라는 생각을 버리는 경지에 이르르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오히려 내가 멀쩡히 잘 살고 있음을 밝히려는 정신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 아직 이혼에서 회복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 사실 자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나의 필요에 따라 이혼이라는 과거의 사건을 매우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이혼과 관계된 감정들이 회색으로 굳어있을 때, 가끔 그 과거의 조각상을 꺼내보는 이유는 이혼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미숙한 나와 결별하기 위해서다. 

이혼 소송을 아무리 길게 했어도 이혼이 법적으로 확정되는 순간이, 실질적으로 나의 이혼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별거나 합의 기간이 이혼 경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이혼' 이라고 찍혀 나올 수 있는 날짜부터가 진짜다. 모든 인간이 매일 어제를 떠나보내면서 삶을 살듯이, 이혼도 그렇게 떠나보내는 하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게 되려면 법적인 절차가 전부 끝나야 한다. 신기하게도 법적인 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저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는다. 복수심과 혐오의 감정은 법적 절차에 종지부가 찍히기 전까지는, 지난 주 일요일에 버리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처럼 내 안에 쌓여 있다. 

이혼 후 심리 상담을 권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심리상담이 필요한 이유는 이혼을 핑계로 남 탓을 하고, 나의 다음 관계나 아이들과의 관계에 전배우자와의 부정적인 감정이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어쩌면 이혼은 나라는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이었을 게다. 전배우자와의 망가진 대화를 알고 있기에, 나는 나의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안한 일이 있을 때, 뒤늦게라도 기억해내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내가 캥기는 일이 있을 때 내가 전처에게 사과하지 않았던 일과, 동시에 나에게 절대로 사과하지 않았던 전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조금은 덜 굳은 듣한 이 기억의 조각들이 모두 나의 부족함이 일부 혹은 전부 책임이 있는 것을 알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위험한 화살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날카로운 독화살은 어제의 나가 맞고 죽었다. 그건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흉터를 감싸지 않고 품에 안아 드러내는 일이다. 


반응형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혼남의 썸  (5) 2025.07.08
자산에 대한 편견  (5) 2025.06.12
이혼남, 무엇을 먹을 것인가.  (12) 2025.06.10
LA 폭동과 주방위군 투입을 지켜보며  (3) 2025.06.08
꿈, 종교, 메세지  (0) 202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