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항상 카카오톡이 문제다.

싱글맨 2021. 12. 1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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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메신저를 쓰거나 뭔가 방법을 강구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시발점이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이 메신저로서 갖는 문제점은 여러가지가 있다. 사실상 전화번호가 주민등록번호로 기능하는 한국에서 모바일 기기 하나당 하나의 계정만 쓸 수 있는 카카오톡은 국민 메신저가 되어 있다. 어지간해서 문자로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경우가 적어졌고, 카카오톡에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이 없는 사람들도 카카오톡은 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소셜미디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만악의 근원이다.


카카오톡에 화면잠금과 비밀번호가 걸리는 것이 시작이다. 문제는 카카오톡의 내용이 아니라 비밀번호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의심은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소셜미디어를 열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의 없이 휴대전화나 카카오톡, 통화기록을 보는 것이 불법 감청에 해당함에도 이혼변호사들은 증거 확보를 위해 휴대전화를 열러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이미 카카오톡이 열렸다면 그 다음은 이메일, 구글 검색 기록, 다른 메신저의 유무 여부 차례다. 카카오톡 채팅중에 아무런 의심스러운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의심을 가진자는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요약하자면,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을 감시하고 싶어한다. 

자, 이쯤부터 문제는 카카오톡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결혼한 커플, 두 사람 사이에 의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의심은 신뢰를 망가뜨린다. 망가진 신뢰는 파국으로의 문이 이미 반쯤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부부사이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을 수도 있다, 둘 중 하나의 마음에 생긴 작은 의심을 제외하면.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 혹은 여자는 '실제로 부부사이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을 수도 있다.'는 방금 내가 적은 저 문장을 수긍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이 블로거 XX도 X소리를 하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전화기와 카카오톡, 채팅 히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록들을 결혼상대자도 가지고 있다. 십년 전, 혹은 이십년 전, 이런 기록들은 애초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쉽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실수를 덮어줄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생각은 당신의 손가락을 거쳐 휴대전화에 기록되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저장된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1. 결혼상대자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바일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가?
2. 혹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과 카카오톡의 내용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가?
3. 만약 모든 모바일 기록을 공개할 수 없다면, 무슨 수로 결혼을 통해 경제적 공동체를 만들고 내 몸과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가?

누구나 겨드랑이가 있고, 안 씻으면 냄새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해한다. 나는 회의적이다. 굳이 상대방의 구석에 있는 기록에 신경쓰면서 결혼이라는걸 해야한다는게. 그런면에서 이혼은 내게 출구였다.

실질적인 조언: 톡방에서 볼 일이 끝났으면 나온다. 그 잘난 카카오톡 복원 프로그램이 이미 나가버린 톡방은 복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각종 동기화의 사용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휴대기기는 용도를 분리하여 사용하길 권장한다. 항상 로그아웃을 생활화하고 비밀번호 관리를 하길 권장한다. 만약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면, 예상 프로포즈 시점 2년전의 모든 기록을 삭제한다. 결코 쉽지 않을 거다, 연락처, 혹시 얘기할 지도 모르는 친구, 고등학교 동창 단체톡방 같은 것들, 항상 우리는 혹시 몰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면 용기를 가져라. 대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킬만한 가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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