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은 사랑에 일정 부분 해롭다.
'결혼을 후회하는가?'
이 질문을 나한테 누군가한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여러가지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결혼을 감행한 결과 지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부모의 아이들이 소중한 것처럼, 아이들과 세상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회가 되는 것은 내가 준비된 아빠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댓가로 나는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두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 일정액을 매월 지급할 책임과, 한 달에 두 번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취득했다.
이런 대답의 끝에는 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두 가지가 답이다.
1.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서
2. 결혼상대자의 재산, 집안, 지위 등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꾸로 생각해보면 저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간의 역사 중 사랑이 이유가 되어서 결혼한 것은 극히 최근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분사회에서 정략결혼과 떄되서, 대를 잇기 위해서 하는 결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사랑과 연애가 갖는 로맨틱한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학창시절의 연애 상대와 결혼했으니까. 그렇게 결혼하면 학창시절의 추억을 거의 모조리 깨먹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 나도 러브스토리가 주된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본다. 포인트는 '사랑'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사랑과 결혼이 반드시 일관성 있게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피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 사람이 좋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좋다.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연애 중간 혹은 끝에 굳이 결혼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지점에서 사실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알았던 여성과 연애한지 적당히 기간도 지났고, 나이도 대충 먹었으니 그냥 결혼해도 될 것 같은데... 이 정도의 고민으로는 결혼에 도달하는데 한참 부족하다. 그렇게 대충대충 생각없이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결혼에 대비가 안 되어 있었고, 준비된 아빠가 되는데고 실패했다. 세상에서 만난 나의 자식들에게 분명히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당신이 연애를 하더라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결혼하지 마라.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위의 두 가지 이유가 없다면, 결혼해서 여러 사람 고생시킬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사실 최근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나은 친구이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끝에 결혼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꼭 식장에서 낸 축의금 이외에 별도로 이 녀석에게 개인적인 축의금을 전달하고 싶었다. 일부러 코로나 핑계로 밖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이 녀석은 눈치없이 신부를 대동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면 지금 막 결혼에 골인한 사촌동생이 내게 신부를 소개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계속 그러길 빌 뿐이다.) 결국 나는 신부가 입회한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축의금을 한 번 더 전달해주었고, 진심으로 그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결혼할 이유가 저 위의 두 가지 밖에 없다는 내 말에 너무 인간미없는, 전혀 인간 같지 않은 성격에 문제있는 사람아니냐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을 수 있다. (개인적인 통계로는 3명중 하나는 그런 얘기를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사람이 솔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결혼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큰 화가 될 수 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랑을 담보로 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선을 넘어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 만나게 되는 것은, 돈과 가족과 법적인 책임이다. 결혼은 현재 결혼상대자의 미래의 채무까지에 대한 이행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이다. 재무적으로 결혼은 최악의 파생상품이다.
사랑을 굳이 결혼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사랑을 그냥 사랑으로 놔둬도 상관없다. 결혼이 사랑을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고 결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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