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50만원 정기적금을 하는 것도 전처는 싫어했다. 자기한테 모든 경제권을 넘기라는 얘기였다. 이혼 전 잠깐 별거를 하면서 정말 절망했던 것은 내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급여 계좌에 전처의 전화번호가 자동 문자발송 등록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공인인증서 USB를 넘겼던 내 잘못이다. 어쩐지 일년에 한 번 상여금이 들어올 때마다 아내에게 1분 안에 연락이 왔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한 쪽이 돈을 관리한다고 해도 서로의 실명계좌에 대한 접근은 서로 동의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적이다. 서로 합의가 된 상태에서 공인인증서도 공유하는 커플을 본 적도 있지만, 정작 나는 전처의 계좌를 본 적이 없다. 내 급여와 상여금은 전부 전처에게 들어가는데, 맞벌이를 하던 전처의 소득은 어떤 곳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의 이혼은 경제적인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이혼조정판결에는 성격 차이니 하는 말로 이혼 사유가 적혀 있지만, 적어도 나는 돈 때문에 이혼했다. 그리고 이 이혼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라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아져서 뒤늦게 이혼을 하는 것은 내게 재정적 파탄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결혼했다가 이혼하면 재산을 절반을 잃는다고 하는데, 그건 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거의 모든 소득을 결혼 체제에 투자했다가 이혼하면 최소한 70% 이상의 금전적 손실을 입는다. 결혼은 그렇게 올인할만큼 안정적인 자산관리 시스템이 아니다.
이혼하기 일년전쯤 찾은 한 달에 50만원씩 모았던 적금이 만기가 되어 600만원이 되어 돌아왔을 때도 전처는 입금을 요구했다.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내 대답은 이거다: "이 돈은 내가 불릴 시드머니이다. 손 댈 생각하지마." 그리고 둘 사이가 벌어져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워 졌을 때 나는 공인인증서를 회수하고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러자 전처는 내가 쉬는 토요일, 내가 자는 사이 내 여권과 자동차키, 지갑을 들고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지갑의 행방을 찾다가 못해 전화해서 혹시 행방을 아느냐고 물어봤을 때, 전처의 핸드백에서 그것들을 내게 꺼내어 돌려주었다. 이 때 이미 결혼 생활을 끝냈어야 했다.
이제 이혼한 나는 양육비를 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상환도 해야하고, 아이들과 놀러나가려면 주유를 하고 때때로 선물을 사줘야 한다. 내겐 돈이 전부다. 그리고 아마 이혼을 고려중인 당신에게도 돈은 전부다. 돈이 없는 이혼자는 비참하다.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사실이지만, 당신이 이혼남이라면 양육비를 입금하지 못하는 순간 배드파더스 같은 웹사이트에 당신 인적사항이 공개될 것이다.
내가 어떤 경제 생활을 하는지는 아이들도 쉽게 안다. 이혼남은 돈이 없어 생활이 비루해지면 아이들도 당신을 찾지 않는다. 자기 아빠차가 제네시스인지 아닌지, 아파트에 사는지 아닌지를 귀신같이 알고 자랑하는게 조숙한 요새 초등학생들이다. 이혼한 커플의 자녀들은 엄마와 아빠의 재산도 비교한다. 그게 정말 안 보일거라고, 혹은 보여도 아이들은 그런 걸로 부모를 판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돈이 없으면 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몸관리에 돈이 들어간다. 살찌지 않아야 하고, 제 때 치료를 받아 건강을 유지하려면 돈이 든다. 나의 돈은 나의 생명과 같다. 돈이 없어서 싸고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게 되면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소득 관리와 투자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종류의 자산을 공부하고 투자하고 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까지 모든 자산을 알고 빠르게 세상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혼남 연예인이나 기업인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소득 수준과 자산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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