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혼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려면 까불지 말고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 (인생을 걸어야하는, 결혼보다 중요한 일에 상담비용 10만원을 아끼려는 것은 내 인생의 가격을 너무 싸게 후려치는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사실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비용은 대개 거의 일괄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물건 사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견적을 받을 필요가 없다. (물론 잘 알아보면 더 싸게 해주겠다는 변호사나 로펌이 있기는 하겠지만, 가격을 싸게 부르는 변호사와 당신의 인생을 두고 상담하고 싶은가?) 그냥 검색해서 눈에 띄는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상담시간을 잡으면 된다. 하지만 얘기하고 싶은 주의사항은 이게 아니다.
흔히 하는 실수들은 대개 두 가지:
1. 변호사를 친구로 생각한다.
이혼을 겪어보지 않은 가족만큼 도움 안 되는 사람이 없고, 변호사만이 이혼을 감행할 때의 유일한 친구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가격표가 있다는 사실이다. 변호사는 내가 지불할 의향이 있는 돈의 크기만큼만 나의 친구이다.
상담을 받으러가면 로비나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된다. 이혼에 필요한 표 같은 것들, 안내문이 대기실의 책상 위에 붙어 있고, 벽 너머로 다른 사람이 상담하는 얘기를 듣기 어렵지만 들려온다. 들리니 듣다 보면, 변호사에게 결혼 생활의 부당함과 이혼을 하려는 자신의 감정을 자꾸 변호사에게 털어놓으려는 분들이 있다.
변호사는 친구나 심리상담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건 합리적인 이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혼을 마음 먹은 사람의 감정은 대개 같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적고, 억울한 것은 많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짓는 것이지, 당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변호사를 만나 상담만 받으러 와서 아직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이라면, 변호사에게 개인사를 털어놓으면서 법적 조언 이외의 감정적 지지를 기대하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물론 친구가 되주려는 것처럼 로펌들이 마케팅을 하긴 한다. 양재역 가정법원 방면 출구에 걸려 있는 마치 언니나 여동생 같은 느낌으로 연출된 변호사 사무실 광고들이 그렇다.
개인 상담을 하면서 법적인 사항들을 체크할 때 변호사를 친구로 생각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자신의 귀책 사유는 감추고 이혼상대자의 결함과 잘못에 대해 자꾸 말하다보면, 변호사가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사실을 가리는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이혼을 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귀책사유나 혹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가정사의 내밀한 부분을 생판 남에게 털어놓는 것이 물론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변호사는 그 모든 걸 알아냐 방어든 공격이든 할 수 있다. 변호사 사무실부터 가정법원까지 이혼당사자의 억울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사실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벽 너머로 어렴풋이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억울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적어도 '나는 변명하거나 지지를 구하지는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변호사는 돈을 지불하는만큼만 당신의 친구다. 첫 상담을 할 때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상담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 가지 문서에 서명을 요구할 거다. 그 문서의 의미는 '당신의 상담 내용은 비밀이지만, 만약 당신의 이혼상대자가 당신이 지금 상담하는 변호사 사무실과 먼저 계약할 경우, 해당 변호사는 당신의 이혼상대자를 대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당신은 상담에 대한 일회성 비용을 냈을 뿐, 아직 그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아니다. 이 문서는 먼저 돈 주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로펌의 양식이다.
물론 막상 상담을 해주는 변호사들은 친절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사무적이다. 당신의 이혼 이야기는 그들에게 그렇게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억울해도, 결혼 인구의 50% 가까이 겪는 흔하디 흔한 가정사일 뿐이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들은 기능에 따라 분업이 되어 있다. 대표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문서를 처리해주는 변호사, 조정절차나 소송에 동행하는 변호사가 다 따로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정에서 끝날 경우와 소송으로 갈 경우는 그 비용의 크기가 다르다.
2. 변호사에게 모든 무기를 쥐어주지 않는다.
이건 내가 한 실수다. 변호사를 한 번 선임하면 그 변호사가 당신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모든 무기를 쥐어주어야 한다. 아무리 비싼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당신이 쥐어주는 무기가 형편없으면 변호사는 제대로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모아온 증거가 있다면 변호사에게 모두 제공할 것. 변호사를 선임하는 단계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증거를 모두 주고 나서도 잘 생각해보자. 혹시 이혼상대자의 동선이나 최근 벌어진 일에 이상한 일은 없었는지, 당신이 만약에 감시당하고 있다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근거를 변호사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이 실제로 이혼 절차에서 적법하게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는 당신이 아니라 변호사가 판단한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일단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알려야 한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겠지만, 나는 이혼상대자가 나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감청했다는 사실을 이혼 절차가 모두 끝난 다음에 알았다. 이런 감청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걸 미리 알았다면 이혼 절차에서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다 끝나고 나서 늦게 알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동안 살아온 정 때문에 이런 걸 그냥 눈감고 넘어가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걸 변호사에게 알리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실수를 되돌리려고 하면 처음부터 알리고 이혼 절차를 시작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과 법적 무리수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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