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아니어도 배우자가 이혼상대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절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했다. 결혼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가족간에 받는 명절 스트레스는 상당하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에 불과하다. 명절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것은 20년전에는 주로 여성이었지만, 최근에는 성인 남성과 청소년도 포함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 대학가니, 언제 취직하니, 언제 결혼할래 같은 지극히 꼰대스러운 단어들을 가족의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처가에 가면 대개 이런저런 먹을 것들을 가지고 와서 먹인다. 별로 생산하는 것도 없는 사람들이 자꾸 먹기만 하면서 쓸데없는 것들을 물어본다. 자기결정권이라고는 없는 배우자의 아버지, 그렇다고 자식들이 크게 존경하지도 않는 것 같은 모습은 나의 미래의 모습으로 보인다. 봉투에 넣어서 돈을 교환하면서 굳이 '니네 아빠한테는 뭐하러 용돈을 주냐' 라는 배우자 어머니의 발언은 결혼 생활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
그런 작은 발언들은 배우자의 집안에서 남성의 활동이 지극히 그 쓸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 때 장인이라고 불렀던 인간이 전구 하나 제 손으로 못 갈 것 같은 분위기로 배 나온채 씩씩 거리면서 앉아 있는 것이 내 눈에도 꼴사나웠으니까. 그러나 분명히 실용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돌을 던질 필요가 있는가. 더군다나 나까지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같다. 이 가풍의 집안에서 나도 나중에 저런 대접을 받을게 뻔하니까. 이 집에서 남편의 존재는 얼마나 가벼운가. 가장의 대접을 바라는게 아니다. 일종의 돈 벌어오는 씨돼지랄까, 힘쓰고 운전하는 청지기랄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친가의 다른 친척들보다 처가의 방문이 많을 때, 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거 좌우균형 안 맞는거야.'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 점을 어필했었다. 술 처먹은 처가의 불청객이 밤 11시에 갑자기 신혼집에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했고, 처가에서 말도 안 되는 여행 일정을 짜와 아이들을 데리고 무리한 일정의 여행을 소화할 깨 분명히 합리적이지 않음을 지적했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작은 힌트들이고, 자세히 생각하기 전에는 일상의 작은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 문제들이지만, 사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누구를 탓하겠는가, 이걸 미리 다 알아보는 눈이 내게 없었음이 문제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그런 생활이 편하고 좋다면 그건 전혀 문제 없다. 그냥 당신의 생활이고 결정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런 독자가 이 글을 읽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처가의 청지기가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닫힌 삶을 살기에 아직은 보이는 세상이 너무 넓다. 단순히 '행복을 찾아서'라는 쓸데없이 희망에 부푼 자기계발 뽕에 취한 말이 아니라, 그렇게 살다가 요즘 같은 변화가 큰 세상에 한순간에 퇴물로 전락해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존의 문제다. 계속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처가와의 관계는 자꾸만 '안정과 상식' 이라는 말로 묶어 놓으려고 할 뿐이다. 요즘처럼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때문에 내집마련에 실패했는가.
한 세대 전의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남성의 경제활동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에게 주어졌던 남성의 우월적인 지위, 너무 우월적이어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상당히 깎어 먹었던 그런 권리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남편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잘 한다'
...는 말 한마디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것이 있고 서투른 것이 있기 마련, 그냥 서투른 것에 대해서 욕을 먹더라도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뿐이다.
결혼 생활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이고, 실수하고 잘 못하는 것은 '아버지와 남자로서 중요 결격 사유' 가 된다. 이러한 벌이 크고 상이 작은 구조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힘든 것이다. 여성에게 명절증후군이 힘든 이유는 단순히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다른 집으로 팔려간 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와 같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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