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TV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길을 스스로 찾는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아빠가 이번 이사를 감행하면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티비를 없애는 일이었다. 아빠가 업무용으로 태블릿을 사용하긴 하지만, 너희들은 이 태블릿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지난 번 너희들이 바뀐 아빠 집에 왔을 때 텅 빈 거실에 거대한 책상만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예전에 이 집에 지금보다 어린 너희들이 왔을 때는 할머니의 티비가 거실에 있었다. 그 때는 너희가 지금처럼 티비에 익숙하지 않고 유튜브를 볼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티비가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지난 2년간 작은 집에서 살면서 너희들은 티비에 익숙해졌고, 아빠의 유튜브 프리미엄 계정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집은 좁아지니 몸을 쓰면서 놀 공간이 없었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없으니 주차장에 고양이말고는 나갈 이유가 없었다.

과감히 티비를 없애버렸다. (한전을 통해 KBS에 말도 안 되는 TV 수신료를 내는 것도 아까웠는데 잘 되었다.)이사해서 돌아온 아빠 집에서 뻥하고 열린 공간을 보고 너희들은 처음에 당황했지만, 너희들은 금방 적응해냈다. 다시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하고, 거실에서 숨바꼭질을 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쓴 '아빠'

티비가 없어지면 너희들이 아빠를 만나러 왔을 때 지루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빠가 영어라도 가르쳐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뭔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었다. 너희들은 아빠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너희들은 집중력을 만들어 줄 환경이 갖추어지면 '프로그램'이 필요없이 스스로 길을 찾는다는 걸 증명했다. 놀이터 모래에 오랜만에 쓴 '아빠'라는 글자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너희들이 아빠의 어린 시절과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스크린이 사라지자, "대화"와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아빠가 다시 자가로 이사와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이제 초등학교 중반부로 들어가는 너희들의 교육을 생각하면 지금 아빠가 돌아온 것이 아주 잘한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선다. 나중에 너희들이 스스로 집중해야할 때, 너희들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라. 

자랑스러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