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에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말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을 의심해라. 행복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사람, 한국의 교육이 돈을 유일한 가치로 가르쳐왔다고 말하는 학자, 구체적인 계획없이 대중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인플루언서, 기후 변화로 스러져가는 인류를 구하지 못해 절박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느냐. 그들이 제대로 된 승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Newsroom의 유명한 모노로그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Do you know why people don't like liberals? 'Cause they lose.')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최근에 아빠집에 티비와 유튜브가 사라지면서 밥상머리 교육이 가능해졌다. 기적 같은 일이다. 너희들은 아빠의 어린 시절과 아빠의 결혼생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묻기도 했다. 아빠는 신이 났고, 너무 '어른들의 심각한 이야기'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빠가 직접 대답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단다. 이렇게 행복은 우리 삶의 찰나에 오는 것이지, 행복은 목표가 이루어지거나 미션이 종료된 완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빠가 아들이 탕수육 소스를 묻히며 식사를 하는 것을 나무라다가, 티슈로 소매와 얼굴을 닦아 주고 나서 '우리 아들 아빠가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 짧은 안도의 순간에 오는 것이다. 행복은 아빠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신발장 사이에서 우리 딸의 돌사진을 발견하고 눈물을 펑펑 쏟을 때 오는 것이다.
아빠가 이 편지에서 더 하고 싶은 말은 사실 따로 있다. 너희들이 조금은 어려워하거나 재미없어하는 그 '심각한 이야기' 말이다. (예를 들면 2024년 대한민국 중위소득 같은)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차갑다. 승패와 이해 관계가 있는 Black and White, Binary World, 흑과 백의 세상임을 분명히 기억하거라. 1968년 히피와 우드스탁으로 대표되는, 깨어 있는 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68혁명' 이라고 부르는 사건 이후에 세상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쭉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쉽게 평등과 생태주의, 차별 없는 세상을 노래하는 사람들, 그들이 너희들의 적이다.
그들이 지금까지의 한국 교육이 물신주의가 팽배한 잘못된 교육을 해왔다는 논평을 아무리 내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 문장이 너무 어려운 '심각한 이야기'로 들리니 다른 예를 들겠다.
아빠는 보지 않았다만, '나의 아저씨' 라는 드라마에 권나라 배우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구나: "빨리 AI 시대 왔으면 좋겠어요. 연기도 AI가 제일 잘 하고, 공부도 AI가 제일 잘 하고, 변호사, 판사, 의사도 AI가 잘 하고, 인간이 잘난 척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오면, 잘난척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인간은 그냥 사랑만 하면 되고,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 너무 지겨워. 난 잘난 게 하나도 없어서 더 죽을 것 같아요."
저런 류의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해라. 자본주의라 부르든 AI라고 부르는 똑같은 것이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잘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나 잘난척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사랑만 하면 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AI는 잘난 사람이 더 잘난 위치에 가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거라. 애초에 차별이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 이유가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이냐. (우리 딸이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으니, 영화로도 답하마. 주드 로 주연의 Enemy at the Gates 등장인물 다닐로프의 마지막 대사 'Rich in Love, Poor in Love' 를 유념하기 바란다.)
아빠가 교육에서 해야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어려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아빠도 아직도 어렵다. 세상이 전부 무지개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너희들은 세상 전부를 가질 수 없다. 세상에서 너희들이 발로 채여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매달리는 일에 너희들이 아주 조금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진실이다. 임용고시를 제외하면 어려운 일이나 뭔가를 생산하는 걸 겪어보지 않은 교사들이 과연 너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줄까.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은 이제 세계화와 진보의 시기가 끝나고, 힘의 시대가 다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휘황찬란하게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말하는 자가 먼저 총을 맞는 시기란 말이다. 아빠가 원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아들과 딸들의 번영이 아니라, 나의 딸과 아들의 승리와 지배력이다.
헌신과 신뢰, 인간이 지향할 수 있는 가치를 논할 수 있으려면 먼저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돈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되려면, 세상을 바로 보고 나 혼자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걸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아니오를 물으면 '예' 나 '아니오'로 먼저 대답한다.
'숫자'를 물어보면 숫자로 대답한다. 예를 들어 '몇 살이니?' 라고 물으면 'X살이요.' 라고 대답한다.
왜를 물으면 '왜냐하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대답한다.
절대로 '사람마다, 그 때 그 때 달라요. (It depends.)' 로 대답하지 않는다.
국어, 영어 시간에 배우는 일이지만, 매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면, 인간은 묻는 말에 두괄식으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바꿔 프레임을 전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논의의 논리에서 멀어지고 말싸움이 되거나 오프라 윈프리류의 '당신은 멋져요. 희망을 가져요' 로 결론이 나게 된다.
나의 아들과 딸아,
함부로 희망을 말하는 천사가 너희들의 악마가 된다. 그걸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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