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학은 괜찮지 않다. 대학원 진학도 어지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말리고 싶다. 15살에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스무 살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이 내가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내가 차마 나서서 말릴 수는 없기에, 글로라도 적어두고자 한다.
나는 늦깍이로 32살을 넘겨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부를 졸업을 하고 바로 학위 생할을 시작해서 결국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구했지만, 그렇게 했어도 늦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진 제도이지만 이공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이용한 동료들에 비해 군대를 갔다온 나는 그만큼 시간상의 페널티를 감수해야 했다. 똑똑한 친구들은 한참 전에 군 문제를 해결하고 유학을 가서 28세에서 30세에 박사 학위를 받은 친구들이 많다. 그 정도 하는 친구들이 교수를 하든,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학계나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게 벌써 10년에서 15년전의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것보다 더욱 좋지 않다. 정말로 스무 살에 박사학위나 JD, MBA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근의 분위기에서 학부 이상의 학위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무용하다. 이런 고급 학위들이 무용한 이유를 차례로 설명하겠다.
1. 가성비가 떨어진다.
실무 경력을 요구하는 분위기로 전체 업계가 바뀌고 있고, 학교 성적 좋은 것보다 자기 연구 프로젝트 포트폴리오와 GitHub Repository가 중요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학위를 하는 것은 가성비가 영 떨어지는 일이다. 실적은 검증할 길이 없는데, 쓸데없이 학위 수당을 줄 위험을 감수할 기업이 있을까? 그나마도 학위 수당을 많이 주는 일도 없다. 학위가 있다고 해서 경력이 인정이 되고 기본급이 올라가는 일도 예전보다 상당히 줄어들었다. 학위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채 같은 것은 이미 전멸했다고 보면 된다.
한편 내가 학위를 하는데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지를 미국 유학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타이트하게 잡아도 연 10만 달러는 생각해야 할 것이고, 누구 덕분에 1,500원에 이르는 2025년 1월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1년에 1억 5천만원씩 깨진다는 뜻이다. 대단히 공부에 집중하여 이공계 박사학위를 5년만에 끝낸다고 하면 7억 5천만원을 학비와 체제비로 지출해야한다는 뜻이다. 이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경기도에 아파트라도 사는 것을 권하고 싶고, 이 돈을 학자금 대출로 빌리겠다면, 그냥 행운을 빈다. 정말로 물 떠 놓고 FED와 차기, 차차기 미국 정권이 금리를 낮추기를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신은 현금흐름이 확실하지 않은 "자산"(학위)를 얻기 위해, 돈을 빌리는 중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당신이 시간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투자할 3년에서 5년의 시간 가치를 환산하면 얼마인가. 개인적으로 내가 학위를 하지 않고,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했다면 더 좋은 생산성을 얻을 수는 없었을까? 물론 다행히 나는 학위에 투자한 돈 대비 9년째 급여를 받아 투자금을 회수했지만, 지금보다 더 큰 Return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정말 없었을까. 당신이 유학에 필요한 7억 5천만원의 최소 금액 이외에 다른 부대 비용과 준비하고 공부하는데 사용하는 5년 이상의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되었든, 가성비로는 답이 안 나오는 생각이다.
2. 유학생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적대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1기 트럼프 정부 시기에도 그랬지만, 2기 트럼프 정부에서는 자국 우선 고용을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대학에 유학 비용으로 돈을 대던 것을 용인하던 캐나다 정부도 유학생이 집값을 올리는 것을 더 이상 참아주기 어려워졌다. 저스틴 트뤼도는 곧 실각할 것이고, 이미 충분이 캐나다를 많이 말아 먹었다. 유럽은 유럽 전체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요컨대 당신이 학위를 마친다고 해도 학위 과정 이후 투자금을 회수하는 단계가 어려운 곳들이 너무 많다. 이는 어느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세계화가 끝난 시대의 분위기에 따르는 것이다.
H-1B 비자를 받지 못하고 귀국하는 당신에게 국내의 고용 환경이라고 녹록하지가 않다. 고학력자를 고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실무 경력을 갖춘 사람과 블루 칼라 노동자이다. 현장에서 힘을 쓰거나 당장 즉시 전력감으로 투입할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학위를 하는 동안 국내 업계 현황과 고용 시장에 감각이 떨어지는 당신을 고용할 고용주는 거의 없다.
심지어 ETRI 같은 정부출연 연구소의 상황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설령 고용을 한다고 해도 요구하는 연구 실적의 수준이 엄청나다. 학위 과정중에 Nature, Science, NeuralIPS 두 세건은 이미 실적으로 넣어두어야 고용이 될랑말랑이다. 자신있다면,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 당신이 공부하는 5년의 기간 연구실과 숙소 이외에 다른 곳을 오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3.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조건들
남성의 경우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사라진 것에 더하여, 30세가 지나 군 복무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빈 구멍이 막힐 것이다. 나이가 몇이든 국적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당신은 군 생활을 해야 한다. 갈수록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건 당연한 조치다. 당신이 국내로 돌아오거나 해외에 잔류하거나, 졸업 이후에 군 생활을 강제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들도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성의 경우, 결혼을 무시하지 마라. 특히 유학이나 대학원을 준비하거나 졸업하는 시점에 이미 33세를 넘기는 상황이라면.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룰 생각이긴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 고학력 고연령 여성을 결혼 상대로 원하는 남성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든 영미권이든 똑같다.) 결혼에 뜻이 없고, 2세 계획도 없는 경우라면 이 제약 조건은 사라진다. 다만, 학부 이상의 과정을 고려하고 있는 이 순간 하게 될, 당신의 선택은 되돌이킬 수 없다.
이런 일들이 어렵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능성'과 '확률'을 별도로 생각하길 권한다. 0.0000000000000000000000001%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로 일어날 법한 일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너희들이 나중에라도 참고할 수 있도록 아빠보다 10년 정도 후배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말을 기록해둔다. 너희들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이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대학원에는 가는 거 아니다. 아빠는 너희들이 학위보다 소유권을 가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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