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에게

너희들은 전쟁을 겪을 것이다.

싱글맨 2024. 5. 6. 11:54
반응형

나의 아끼는 아들과 딸에게,

불행하게도, 너희들 세대에 전쟁을 겪게 될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러시아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너희에게 일러두기는 했다. 하지만, 아빠가 얘기하는 것은 이 반도에서의 전쟁이다. 전쟁이 너무 빨리 일어나는 것을 더 걱정한다. 너희들이 너무 어릴 때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전쟁이 아빠는 두렵다. 너희들에게 레고를 어린이날 선물로 구하기 위해 갔다가 아빠 눈에 띈 물건이 있어 같이 들고 왔다. 선물을 사놓고 정리를 하다보니, 아빠가 오랫동안 보관했던 다른 것도 하나 더 있구나. 

KF-21 과 베레타

너희들이 세상에 오기 전, 개발자이자 엔지니어로서 T-50 을 처음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뿌듯함이었다. KF-21 개발이 시험 비행 단계에 들어갔을 때도 비슷했다. F-22 랩터를 닮은 외형에 놀란 것외에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크게 달라진 점은 너희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되었다.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아들아, 누나와는 다르게 너는 이 모형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아빠가 같이 만든 레고보다, 저 날개가 더 예쁘다고도 했다. 그게 예뻐서 문제다. 모형은 아주 작은 부품도 있어 만들기 어려웠지만, 주익이 완성된 모습을 보고 나서 네 눈빛이 달라졌던 것 같다. 옆에 있는 베레타 모형은 아직 방아쇠도 조립하지 않은 껍데기만 맞춰 놓은 상태지만, 장난감이긴 해도 무기라는 것을 아마 처음 네 손에 쥔 것일 게다. 아빠각 분명히 네게 얘기해줬다. 비비탄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총구 안을 눈에 대고 보지 말아라. 총구는 반드시 바닥이나 하늘을 향해야 하고,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에게 겨누지 말아라. 위험하면서, 무례한 행동이다.

전투기와 비행기의 차이를 캐물었다. 아빠는 설명해주었다. 베레타보다 저 전투기의 살상력이 훨씬 크다.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 클릭 한 번이면, KF-21 시험 비행 영상을 보여줄 수 있어, 보여줬다. 가까운 미래에 네가 저 조종간을 쥐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 관계 없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나이브하게 평화를 기원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무기를 내려 놓는다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무기를 쥐고 있을 때 평화를 강제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그 질서가 강제되었기 때문이지, 그 질서가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대개 평화와 질서라는 것은 만족한 사람보다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네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는 잘 알고 있다. 쓸데없는 얘기 애들한테 하지 말라고 하겠지. 글쎄, 그게 쓸모 없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전쟁으로 배운 교훈은 한 세대를 못 가는 법이다. 아빠가 전쟁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너희들에게 어려울 수 있다. 좀 더 쉽게 펼쳐서 말해주마: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다소 속된 표현을 쓴 것을 이해하거라. 하지만, 이렇게 해야 너희들이 알아듣기 편할 것이다. 

합리적인 관찰에 따르면,
다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다 함께 잘 보전된 환경에서 살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보다, 탄소를 배출할 인간을 줄이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아빠도 싫어하는 명제다. 이게 옳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너희들이 인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위의 두 명제가 역사의 사건으로 반복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희망은 잃지 말거라. 하지만 너희들의 희망은 너희 손에 무기가 쥐어져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미안하다. 아빠가 어려운 얘기를 했구나. 사랑한다. 

아빠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