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들어 이 시를 보았다. 틀렸다. 이 시가 틀려먹었다는 뜻이다. 싯귀를 읽고 나서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 아빠가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하는가? 소탈한 맛이 있는지는 몰라도, 세태와는 맞지 않는다.
자식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자식의 인생에서도 대학은 큰 의미가 없고, 아빠된 입장에서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자식이 대학 졸업하는 것을 다 큰 것으로 생각하는 비유라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자식이 다 크고 나서 아빠가 자산을 매각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이가 좀 들어서 땅 팔고 여행을 다니려는 아빠를 보고 크는 자식은 똑같은 수준의 성장을 하고 자기 자식이 다 크면 자기 인생 다 산 것 같은 말을 또 할 것이다. 이게 통하던 시절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한가로운 시절의 이야기다. 소 팔아서 자식 대학 보내던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이 제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다. 전혀 성장하지 못하거나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하는 것, 그 두 가지 선택만이 있는 세상이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프로불편러의 의견이지만, 땅을 판 그 돈은 어딘가 재투자해야 한다. 자식과 함께 혹은 자식에게 투자하거나, 아빠가 자기를 더 키우기 위해서, 자기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다시 투입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힘든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크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사는 모습을 배웠다. 싫어도 배우게 된다. 자식은 아빠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을 배운다. 땅 팔고 여행이나 다닌다는 말은 자기 삶에 만족한다는 의미다. 그 자식은 자기 삶에 만족하는, 한계를 인정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 아들과 딸이 스스로에게 쉽게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아빠인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뭔가 좋은 걸 자꾸 주려고 하는게 아니라, 아빠가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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