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회식을 기피하는 이유

싱글맨 2023. 5. 28. 13:27
반응형

남의 돈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회식은 참 슬퍼지는 시간이다. 반성의 시간이자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다. 더 이상 전염병을 걱정하지 않게 되면서, 회식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직장의 문화가 바뀌고 있고, 회식이라는 것이 업무의 연장일 수 있다는 단점을 단순히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늘어난 회식의 횟수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진단할 필요도 없다. 

좀 짠한 구석이 있다.

판교 언저리에서 나가봐야 갈 곳이 뻔하긴 하지만, 익숙한 집들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이야기가 이어지고, 누가 승진을 했고, 누가 퇴직을 했고, 임금 피크제가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관성으로 작용한다. 그런 얘기들, 그런 주제가 나랑 상관없다거나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승급에 따른 연봉의 제약이라던가, 임금 피크제의 사각 지대나, 조금이라도 더 퇴직금을 많이 받는 방법을 몰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거기에 답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직장인인 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들이긴 하지만, 내가 벗어나야 하는 주제들이다.

이혼남은 직장인으로 남을 수 없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쓸 때도 분명히 사실이었고, 지금은 더욱 더 그러하다. 임금을 아무리 많이 받고 퇴직금을 많이 받아도, 재정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지속적으로 기합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임금이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급여 체계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고, 국가의 세금 체계가 그것을 막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도 IT 업계라고 1억이 넘는 연봉에 대해서 동료들은 쉽게 얘기하고 그게 대단한 것 같이 여기지만, 1억을 막 넘긴 연봉으로 수도권에서 노후를 대비하면서 양육비를 모두 지급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 임금이 대단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임금만으로' 절대 될리가 없다는 얘기다. 40대 중반의 팀장급이 38% 소득세 과표를 적용받는일을 보기 어렵다. 1억원대 수준의 '억대 연봉' 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90년대말의 이야기다. 

회식 자리는 회사 뒷얘기가 항상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런 회사 생활에 대한 관심과 그래도 회사에서도 좀 잘나가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항상 직장을 빠르게 그만두지 못하도록 하는 관성으로 작용한다. 직장인으로서 알아야 마땅한 중요한 회사 생활의 디테일들이 나를 '직장인'으로 머무르게 만든다. 

'억대연봉이 장난인 줄 아느냐.', '너는 그렇게 잘 나고 따로 노력한 것이 있어서 직장인을 무시하느냐.', '너는 얼마나 직장인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성과를 냈느냐.' 이런 것들이 예상할 수 있는 반발이다. 나는 안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회식 자리가 깊어갈수록 이상하게 묘한 비감에 사로잡힌다. 

나도 알고 있다.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은 흔한 직장인이라는 것을. 어떤 이는 좋은 구두, 옆자리의 동료는 신경써서 모은 고가의 안경테를 쓰고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나도 매번 스스로의 게으름과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별도로 시작한 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겨우 손해만 보지 않고 있을 뿐, 자리 보전하는데 급급한 나에 비해 나와 함께 같은 회식 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중에는 이미 투잡 쓰리잡을 뛰거나 다른 명의로 시작한 성공적인 사업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것들을 알기에, 회식 시간이 깊어져 8시쯤이 지나면 나는 말이 없어진다. 나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가, 어쩌면 나보다 더 튼튼하게 미래를 준비했을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떨어지는 내가 이 자리에 앉아 노닥거릴 여유가 있는가.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냉혹한 자아비판이 가슴 속을 파고 든다. 그동안, 천재일우의 기회였을 지난 전염병 시국을 나는 왜 이 정도 밖에 살리지 못했나.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로 자위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괴로워진다. 

괴로움이 절정에 달해 진짜 술이라도 한잔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9시전에 계산을 끝내자는 일동의 분위기에 제정신을 차린다. 다른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고, 일부가 벌써 대리기사를 부르고 있을 때쯤, 나는 차 뒷좌석에 가방을 넣어두다가 아이들이 않는 카시트를 새삼스레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능력있는 아빠로 인정받고 싶다는 그 마음.

인사를 나누고 동료 직장인들과 헤어진다. 우리는 내일 또 실패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어쩔지 모르지만, 나는 내일 또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혼했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릴 수 없는 것처럼 혼자 가슴속에 묻어야 하는 일이다. 목이 마르다. 목마름을 참고 눈가를 훔치며 시동을 건다. 그렇게 속이 말라가는 것을 참으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