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비 블레이저를 하나 걸치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흔한 아이템이라고 치부하는 것보다는 그만큼 네이비 블레이저의 활용성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깔끔한 이미지를 심는다.
오프로드 동호회에 나간다면 스포티한 캐주얼에 SUV를 몰고 나가는 것처럼, 꼭 일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살짝 포멀한 이미지가 필요한 자리라면 네이비 블레이저를 활용할 수 있다. 자켓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정장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네이비는 기본 색상이고 튀지 않는다.
40대 남성에게 20대가 누리는 호사는 없다고 보면 된다. 30대까지만 해도 티셔츠 하나로 버티면서 상황을 소화할 수 있지만, 40대가 되면서 똑같은 의복으로 모든 상황을 소화하려고 무리를 하면 반드시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평소에 일을 하면서 캐주얼한 작업복을 입고 있다가도 갑자기 포멀해져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혼남인 내 입장에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아, 이 사람, 이제 좀 포기했나...?' 라는 생각을 심어주지 않고 싶다. 옷매무새에 조금 신경을 못쓴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매번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분명히 세상은 보이는 것으로 나를 판단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과 자기 관리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정말로 한 끗 차이다. 최근에 아이들을 만나는 날에 블레이저를 챙겨 입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질문한다. '아빠 오늘 양복 입었어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가 너희들을 만나는 날은 아주 중요한 날이고, 그렇게 중요한 날 아빠는 꼭 단정하게 입고 올거야. 앞으로도 너희들에게 약속한다.' 그 날 이 한마디로 네이비 블레이저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했다.
2. 실용성: 실내외 상황에 맞게
개인적으로 독서토론 모임에 나갈 때,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었다. 하나같이 오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6월을 앞둔 모임 장소는 에어컨을 풀로 가동했고, 오래 앉아 있기에 실내는 상당히 추웠다. 블레이저는 단순히 각잡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냉방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실용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이건 가디건이나 다른 셔츠를 이용해도 관계 없다. 하지만 실용성과 함께 위에서 말한 '포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블레이저다.
적절한 소재의 블레이저라면, 비가 뿌리는 날 레인코트의 역할을 대신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입는 블레이저가 울 소재이기 때문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젖기 전에 방울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장마나 태풍 수준의 비라면 결국 젖어버리겠지만, 소나기 정도에는 일반적인 셔츠나 가디건이 젖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린다. 부처님 오신날 연휴에 비가 꽤나 쏟아졌지만, 옥외 주차장에서 우산 없이 건물까지 걸어오는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실내에 들어와 블레이저를 툭 털어내고, 옷걸이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 말라주었다.
3. 범용성: 드레스다운과 드레스업이 둘 다 가능하다.
블레이저를 어떤 셔츠와 바지를 입느냐에 따라 네이비 블레이저만큼 여러가지 환경에 쓸 수 있는 의복이 없기 때문이다. 면바지나 청바지, 스니커즈와 함께 입는 것이 가능하고, 바지의 캐주얼함만큼 전체적인 분위기가 캐주얼해지는 것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리바이스 501 화이트진과 입는 것을 선호하고, 신발은 밝은 색상의 로퍼를 주로 신는다.
함께 출장중이었던 동료도 나와 비슷하게 블레이저를 입는데, 같은 네이비 블레이저이지만 재질이 조금 더 캐주얼한 것으로 흰 색 스니커즈와 함께 입는다. 출장중 일반 업무에는 스니커즈와 입고 있다가 상대방 상급자와의 저녁 자리에는 신발만 구두로 바꾸어 신고 나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녁 회식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전혀 없었다. 울 소재의 내 블레이저보다 훨씬 더 캐주얼한 느낌이 강해서 오히려 범용성은 더 좋아보였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제품으로 선택한 것은 핏 때문이다. 어깨가 넓고 팔이 길어 보통 드레스 셔츠를 115 이상으로 맞추어 입는 나에게 브룩스 브라더스 네이비 블레이저의 미국인 핏이 도움이 되었다. 처음 입어볼 때 거의 완벽하게 맞았고, 팔을 늘려야 하거나 어깨가 좁아 블레이저가 울거나 뜨지 않았다. 이미 말했듯이 소재는 울 90% 이상이고, 클래식하게 금장 버튼이 달린 모델이다. 옷의 전체적인 크기에 비해서 라펠의 너비가 조금은 좁은 편이다. 보통 수트의 라펠 너비를 잡을 때 적어도 신용카드 가로 너비보다는 넓은 라펠을 선호하는데, 이 네이비 블레이저의 라펠 너비는 거기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다.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울렛에서 25%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여러 아울렛에 동시 입점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나는 운좋게 30% 할인가로 구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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