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아무도 이혼 이후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싱글맨 2022. 10. 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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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는 방법, 양육비와 위자료 재산분할에 대한 키워드의 검색 결과는 넘쳐 난다. 그 결과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게 문제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어찌되었든 이혼이라는 이벤트 자체에만 있다. 문제는 이혼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뻔한 얘기는 누구나 다 하면서도 무엇의 시작인지에 대한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당장 결혼생활의 고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이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언젠가 끝이 나겠지.

단순히 이혼 이후의 경제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문제는 자기 자신이 답을 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러다보니 그 잘난 이혼변호사들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혼에서 돈이 되는 부분은 이혼 자체이지, 이혼당사자의 그 이후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당장 돈이 되는 일에 집중한다. (그건 당연한거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렵게 이혼을 해놓고 기껏 이혼 이후에 고민하는게 돌싱의 연애와 재혼이라는 것은 얼마나 얄팍한가. 미디어 자본이 이혼을 두 번 벗겨먹는 방법이다. 이혼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하다가 이혼에 대한 법률적인 부분이 아침 방송을 타고 이혼을 하고 나니, 남의 이혼사를 예능으로 소비하게 하는 저열한 방식말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이든 이혼이든 이미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나도 모르게 생의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결혼이란 것을 했으며, 사실 따지고 보면 이혼을 경험한 이들, 혹은 결혼이든 이혼이든 애초에 너무 멀었던 사람들에게 그건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세계의 신기루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차가 있다보니 일종의 시간문제이긴 하지만.

이혼은 내게 다시 찾아온 기회다. 결혼 전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혼, 취업, 진학 같은 인생의 메이저 이벤트가 눈 앞에 있으면 그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결혼, 취업, 진학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잘 묻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이 그렇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런 인생의 이벤트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살림살이의 무게와 양육, 그리고 가까운 이들과 나의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뭔가 잘못되어 가던 길에서 다시 돌아나왔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따져보고 남은 인생에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따져볼 수 있다. 다만 이혼을 겪은 사람이 무얼 원하는지는 당장 돈이 되지 않고, 세상이 쉬운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없다. 그러니 아무도 이혼 이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밖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결혼이라는 수단에 기대는 짓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돌려막기에 불과하다. 자녀가 없는 이혼자가 2세를 갖기 원한다면 재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만, 생활수준이 맘에 안들고 외로워서 재혼을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안 될 것이다. 누구나 늙는다. 결혼시장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감가의 대상일 뿐이다. 

인생은 언젠가 끝장이 난다. 이혼 자체가 고통스러운가, 그 고통도 언제가 끝이 난다. 이혼을 겪은 누구나 사실은 이걸 다 알고 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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