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어느 자영업자 이야기

싱글맨 2022. 10. 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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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위치가 나쁘지는 않은데, 입점을 해놓고 장사랄 하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만 세 번째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대로변은 아니고 상권이 번화한 것도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 세 군데와 병원 사이에 있는 이면도로 사거리 코너 자리의 1층이니 딱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낮에는 카페이고 밤에는 술집을 하던 이 곳에 들어간 적이 있다. 커피나 차를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 위스키나 와인을 주문해야 하는 곳,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라자냐를 주문했다.

라자냐는 사실, 라자냐가 아니었고, 링귀니도 펜네도 아닌 애매한 파스타가 기성품 소스에 버무려져 나왔다. 마음 속이라도 따뜻하게 잘 익혀서 나왔으면 좋았겠는데, 전자렌지 알단테를 맞추어 낸 어정쩡한 파스타가 17,000원. 나는 그 곳을 다시 찾지 않았다. 사실 인테리어가 그럴 듯해서 다시 가고 싶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 집이 저녁 시간에는 열지 않는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좋은 카페

좋은 카페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 가게는 달에 착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인테리어가 멋있다. 하지만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와 병원 근처의 술집에서 와인이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가격도 비싸지만, 결정적으로 들어갔을 때 '웰컴' 하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그 가게 지하의 순댓국집이 훨씬 장사가 잘되고 오래되었다.

올여름 비가 많이 왔지만, 어느 가게의 창고에는 세 번이나 물이 넘쳤다. 정작 비가 한 참 많이 쏟아지던 장마철이나 태풍에는 피해가 없었다. 지하에 펌프가 있어서 그것만 잘 돌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유 없이 펌프가 멈춰서면 거짓말처럼 물이 넘쳤다. 다행히 예상을 해서 물건을 잘 치워둔 덕분에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도 물건은 출고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사업장이 장사가 잘 되는 집은 아니다. 아직 실적이 없는 사업자등록번호만 있는 회사다. 세금을 내며 버티고 있고 다른 목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 회사는 돈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사실 사업자등록도 제대로 안하고 어설픈 영업을 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다. 앞으로 너무 조금씩 나가는게 큰 문제이긴 하지만, 빚이 있다거나 엄청난 돈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작정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 회사은 이제 첫 매출을 올렸다. 여전히 창고에 거미줄이 코너마다 있는 희한한 업체이긴 하지만, 용하게 버티고 있다.

이태원과 명동은 이제 새로운 자영업자들이 임차를 시작했다. 건물주들은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시작했고, 지금도 홍대에는 새로운 건물이 동시에 세 군데에서 올라가는 중이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들어가기 어려웠던 어두운 모텔들은 숙박업 장사를 걷어치우고 자산 가치를 불리기 위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다. 그렇게 1층에 점포가 있는 오피스텔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거기서 월세를 낸다.

여기까지 나열한 모든 자영업자, 사업자, 건물주를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이 오면 그 시체 위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장사를 못할 수도 있고, 인테리어를 여러번 할 수도 있고, 성공적인 가게를 팔고 출구전략을 펼칠 수도 있다. 건물주를 부러워하거나 물이 들어오는 창고 건물주에게 따지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장사와 사업에는 차이가 있고, 자영업자와 사업가의 차이도 있지만, 그 단어들이 특별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어느 자영업자가 있다. 본인은 자영업자인 것을 모른다. 본인을 노동자, 혹은 예술가로 정의하기도 한다.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보다 큰 사회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댓글에는 '땀 흘려 버는 돈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 라고 깨알같이 달려 있다. 나는 이들을 딱하게 여기거나, 비웃거나, 선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이제 마흔이다. 섣불리 그들에게 뭔가를 배우거나 뭔가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그건 건방진 일이다. 그저 조용히 내 업장의 장부를 보며 올해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을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자영업자가 영원히 그렇게 노동 소득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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