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결혼을 축하한다.

싱글맨 2022. 7. 2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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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늘기 시작했다. 주변 지인들이 선뜻 식장에 많이 와달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면서 소식을 알려오는 횟수가 늘었고, 아직 날짜를 잡진 않았지만 진지하게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도 보인다. 일부 연예인들의 결혼 발표까지. 다만,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을 약간 어려워하는 것 같다. 

결혼은 망설임없이 축하할 일이다.
그들은 중대한 결심을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 시작한다. 그걸 축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특히 나에게 청첩장을 보내왔다면 더욱. (상황이 허락한다면 식장에서 박수를 쳐준다면 좋을 텐데.) 어떤 커플은 내가 양쪽 다 아는 사람들이라 축하하는 마음이 두 배가 된다.

결혼 축하 꽃다발



이혼을 입장에서 결혼을 지켜보는 것이 예전과 달라진 것은 분명히 있다. 결혼식에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결혼 소식을 전해온 이들에게 결혼 전후 상황을 물어보면 사실 많은 공부가 된다. 내가 알게 되는 것은 결혼 당사자들의 사정보다는 나에 대한 것이다. 

'아, 어떤 준비가 잘 되어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아주 쉽게 해결되는구나.'
'이런 식으로 마음을 먹는 것이 결혼 생활에서 크게 플러스가 되겠구나.'


결혼을 앞둔 이들은 내게 '나의 결혼 생활'에서 어떤 불균형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내가 결혼생활에서 집중하지 못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때로는 지나치게 철저한 준비가 상대방에게는 예민함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아마도 가장 내가 부족했던 부분은 결혼을 결행할 시기를 결정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결혼을 푸쉬하는 실수를 했다. 이혼을 한 지금도 결혼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우환은 경사를 가린다는 걸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그 시점에서 한 두 해 정도 식을 미루었어도 충분히 문제가 없었을텐데. 효과는 극적이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관철시켰다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그건 이후 여러번 다툼의 씨앗이 되기도 했었다. 결혼을 연기했었다면 신랑이었던 나의 결혼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게 했겠지만, 동시에 후환을 적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방역 환경때문에 무려 2년반이라는 시간동안 결혼을 딜레이시킨 어떤 커플은 오히려 결혼 시기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두 커플 뿐만 아니라 양가의 상호이해도도 높아졌다는 얘기를 내게 했다. 그들의 결혼 같은 중대한 행사가 모든 것이 정시에 결행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줬다. 오히려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은 허탈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처럼 타인의 결혼에 대해서 최대한 좋은 배울 점을 찾는 것은 나의 생활에도 큰 플러스가 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결혼과 관련된 어떤 문제를 나보다  잘 풀어냈다. 그들은 사랑 이상의, 결혼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내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런 생활의 배움을 주는 이들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자, 어른의 태도다.

'이혼' 이라는 키워드로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보면, 지나치게 결혼에 대해 적대적인 컨텐츠들을 만날 때도 있다. (블로그들은 이미 변호사들이 부지기수고, 유튜브에는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한 영상이 차고 넘친다.) 이혼을 경험한 이들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도 내 경험을 토대로 상상만 해본다.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사회 관습이나 제도에 대한 불합리함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혼을 겪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나에게 그런 자격을 부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그리고 곧 소식을 전할 모든 커플에게,
결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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