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사람이 싫다" (손수호) 이례적인 책 리뷰

싱글맨 2022. 7. 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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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람이 싫다"는 세상을 맨몸으로 살아나가는 내게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변호사로서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당연히 이혼사건도 등장한다. 이혼남이 운영하는 이혼과 그 이후를 다루는 블로그에서 당연히 이혼에 대한 내용을 리뷰로 다룬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이혼남인 내게 위로가 된 부분은 바로 이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작가의 눈에 보인 '중경삼림'


결혼이 막바지로 치닫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싫다" 라는 짧은 문장이 책 내내 반복된다. 그건 작가가 변호사로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겪은 사람의 진면목에 몸서리치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법조계는 절대로 이상적인 법치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법 체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법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회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싸우는 용병이라는 표현에서 작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 이 블로그의 변호사를 다룬 글에서 결이 같은 내 생각을 쓴 적이 있다. 이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나를 대신해 싸우는 용병인 변호사에게 '증거'라는 적합한 무기를 쥐어주어야 한다. '조정 전치주의' 라는 생소한 법조 용어를 소개하면서 이혼 절차에 한 번은 조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건의 절차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선을 넘는 조정위원들을 나의 이혼 절차중에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혼 당시 내 변호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조정위원들이 가정법원의 조정 업무를 너무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여성이나 남성에게 편향되어 유리하거나, 혹은 무조건적으로 이혼을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리고 다행히 당시 내게 배정된 조정관이 상당히 무색무취한 편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물론 이 책이 이혼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혼을 포함한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이 무서운지,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혹은 얼마나 법 앞에서 약한지에 대해서 담담히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변호사로서 취하는 조심성이다. 

이혼을 소재로 블로그를 꾸려나가면서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조심성이다. 변호사로서의 덕목을 설명하는 작가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예의 까칠하지만 면밀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혼남으로서 배우고 익힐 일이다. 조심성은 곧 균형감각이고, 이혼남에게 균형감각은 생존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작가와 비슷한 삶에 대한 태도를 만난다. 의뢰인을 위해 일하지만 때로는 의뢰인을 의심하기도 해야 하는 직업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작가는, 나와 많이 닮았다. 이혼 후 나의 삶을 사랑하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나. 자식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인 자식 사랑과 아이들에게 나를 투사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지만, 누구에게도 결혼과 이혼을 함부로 추천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려는 나.

조심스럽게 유지하는 이 경계에 선 삶은 항상 위태롭다. 다양한 의뢰인을 만나면서 작가가 얻은 통찰의 결과가 나와 비슷하다는 점, 그 위태로운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한편으로 한숨을 쉬면서 힘겹게 버틴다는 점, 이 버거운 짐에 때로 밀려오는 자기연민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점, 이런 것들이 나를 위로한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작은 증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은 위로를 회사 도서관에서 찾았다.

싸인?

왜 작가 본인의 서명까지 들어 있는 이 책이 내가 다니는 회사 도서관에 꽂혀 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좀 안타깝게 생각한다.)

작가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나보다 한 두살이 많은 사람일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손수호 변호사를 몰랐다. 손수호 변호사의 개인 유튜브 채널은 알찬 정보로 가득한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급하게 관련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열심히 보지만, 흥미 위주의 유튜버 시장에서는 대단한 인기를 얻는데는 시간이 걸릴 법한 내용들이다. 

작가는 유서를 작성하려는 어떤 의뢰인과의 만남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자기 스스로를 알아야겠다고,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영화 '중경삼림', '화양연화', '아비정전', '타락천사'에 맞추어 편집해냈다. 나도 그랬다. 이혼 후 2년 동안, 나는 나를 알기 위해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는 노력을 했다. 내가 무얼 못하고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 아는데 생각보다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나도 나의 행적을 리뷰했었다. 마치 오대수가 15년간 갇혀서 인생의 악행을 공책에 기록한 것처럼. 그렇게 나는 마흔이 되고 나서야 나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내가 유서를 써야할 만한 시기에 심각하게 작가에게 의뢰를 고려할 것 같다. 

이혼이라는 주제로 고민을 하다가 이 블로그에 이른 당신이라면, '82년생 김지영'이나 '우이혼' 정주행따위 보다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혼을 겪을 예정이거나 겪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반성이지, 피해자가 되어 심리적으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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