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50:50으로 쪼개어 결혼 준비부터 신혼을 비롯한 모든 결혼 생활을 신부와 신랑이 똑같이 반반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처음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인다. 손해보기 싫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마치 타당한 것처럼 들리는 이 컨셉은 생각보다 실행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잘 동작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1단계: 가정이라는 단위의 주식회사화
50:50으로 기여분을 정확히 맞추었을 경우, 양쪽의 의결권은 동등하게 유지된다. 이게 평등한 것 같은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의사결정권은 누가 하는가. 반반 주식회사에서 경영권은 누가 갖느냐는 말이다. 서로 반반 지분을 나눠가진 조직에서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주장하다가 서로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이 조직은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가정이 아닌 일반 주식회사에서 5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 절반이 아니라 절반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주식회사는 주주가 단 두 명이 아니다. 복수의 주주가 크고 작은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따라 설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2명으로 구성된 주식회사에서 반반 지분은 의사결정을 마비시킨다.
우리 집은 의사결정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데?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잘 뜯어보길 바란다. 누가 주장하고 누가 받아들이는지, 두 사람의 의견이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 한 쪽이 물러서야 한다.
2단계: 원하지 않은 의사결정을 따라야 했을 경우 드디어 손해를 봤다는 확증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내 의사결정에 반하는 가정 지출은 '나의 손해'로 확정된다. 이렇게 확정된 손해는 하나둘씩 쌓여가고 어느 한 쪽의, 혹은 양자 모두에게 불만이 생기는 계기가 된다. '반반으로 하고 내 기여가 같은데, 왜 자꾸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 가정이 흘러가지?' 라는 의구심. 의구심은 어느 부부에게나 있다. 그러나 반반 결혼을 선언한 이력이 있고 없고가 다르다. 그리고 이렇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모인 확정된 손해는 전부 나중에 이혼 소송에서 각자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3단계: 감정적인 사건이 생긴다.
이건 모든 개인 사이의 인간관계에 다 있는 일이다. 부부 사이에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겼을 때, 양쪽 모두 논리에만 입각해서 토론과 타협을 거친 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맘에 안 드는 일이 마음에 쌓이면 임계점을 넘어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누가 집을 나가거나, 연락이 두절되거나, 화를 내게 되고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언어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순간 지옥의 문이 열린다.
모든 부부가 겪는 일이지만, 반반 부부가 다른 부부와 다른 점은 처음했던 약속대로 지켜지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이 증거가 되어 이미 준비된 상태라는 점이다. 어느 한 쪽이 아니면 둘 다 멍청한 짓을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이혼은 아주 쉬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된다.
4단계: 쉬운 이혼과 정산
정산이 쉬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이혼해'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두 사람의 계산서가 선다. 반반 결혼을 했으니, 모든 것을 다시 반반씩 나눠 가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지난 번에 X는 내가 손해봤으니까, 이건 내가 더 가져가야 해." 라고 동상이몽 속에 있는 상태에서 퇴근길 지하철역에 "이혼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라는 광고판을 보고 나면, 당신은 이미 전화를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반 결혼은 반반으로 쪼개지기 아주 쉬운 결혼이다. 두 가지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물리적으로 붙여놓은 결혼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합력은 상당히 약하다.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을 경우 이혼을 하는 것이 지저분하고 지리한 과정이 되는 것은 맞다. 반반 결혼은 마치 그 약점을 피할 수 있는 방법 같지만, 사실 물리적 결합 수준에서 멈췄기 때문에 청산도 빠르다. 지난한 결혼의 해체 과정이 없다는 장점이 곧 쉬운 이혼을 의미한다. 둘 사이에 아이도 없다면 더욱 쉬운 이혼이 될 수밖에 없고, 결론은 다 같이 손잡고 돌싱글즈나 결혼지옥의 시청자가 되는 일만 남는다.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 마인드 (6) | 2025.03.23 |
---|---|
이혼남의 자아 비판 III : Appearance, Behavior, Communication, Digital footprint (ABCD) (2) | 2025.03.23 |
Bleu de Chanel은 왜 스테디셀러 향수인가 (1) | 2025.03.22 |
이혼남의 자아 비판 II : Leadership + Status (1) | 2025.03.16 |
이혼남의 자아 비판 I : Competence (1) | 2025.03.16 |